어머니가 말려서 빻아주신 고춧가루
♥ 친정어머니와 고춧가루 ♥
지난 추석 전에 친정어머니가 “우리 고추를 말리다 보니 네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홍고추 두 상자 말리면 김장을 하고 내년까지 먹을 수가 있을거야.”하셨는데 벌써 다 말려서 곱게 가루를 만들어놓고 가지러 오라고 하셨다.
나는 집에서 먹다 남은 우유와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을 챙겨가지고 친정에 갔다. 친정에 도착하니 조카들이 먼저 반색을 한다. 내가 “고모가 자주 오면 좋겠지?”하니까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네”한다. 초등학생인 조카들이 한창 먹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인데 군것질도 마음껏 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어서 늘 마음에 걸린다.
베란다도 없이 비좁은 주방 겸 거실 한 켠에는 어머니가 말려서 빻아놓은 고춧가루가 봉지 째로 놓여져 있다. 어머니는 여러 개의 봉지 중에서 세 개를 건네주시며 “홍고추를 두 상자 말렸더니 씨를 다 털어서 그런지 요것밖에 안나왔구나. 이건 유라네(큰 남동생의 딸) 것이고 나머지는 김장을 해야지.”하신다. 주인과 한 건물에 살고 있어서 옥상을 이용할 수 있었기에 홍고추를 말릴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홍고추 값 십만 원을 통장으로 보내드렸지만 뜨거운 뙤약볕에서 얼굴을 그을려가면서 말린 정성은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나는 전에 지인을 통해서 시골에서 말린 고춧가루를 사다 먹었지만 대부분 태양 볕에서 말린 것이 아니라 방에서 불을 때고 말린 것들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친정 부모님은 땅을 사서 손수 지은 3층짜리 상가주택을 2001년 9월18일 큰 남동생 때문에 헐값에 팔기 직전까지 해마다 옥상에서 홍고추를 말리셨는데 대지가 66평이고 건폐율이 90%나 되어 옥상은 무척 넓었다.
상가주택의 1층과 2층은 임대를 하고 3층은 살림집으로 사용했는데 두 가구가 살아도 충분할 만큼 넓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어머니가 젊어서 농사를 짓던 경험을 살려서 물탱크를 제외한 가장자리에 적벽돌로 둘레를 쌓고 흙으로 채워 텃밭을 꾸미고 고추, 가지, 상치, 호박, 호박, 깨를 심어서 식사 때마다 조금씩 솎아서 먹곤 했다. 그래서 나도 친정 가까이에 살고 있었기에 언제나 신선한 무공해 채소를 공짜로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텃밭을 제외하고 중앙에는 큼지막한 들마루를 짜서 그 위에 비닐장판을 깔아서 비가 오더라도 걸레로 닦기만 하면 항상 깨끗하였다. 여름이면 식구들이 옥상에 올라가서 부탄가스 위에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하고, 모기향을 피워놓고 밤늦게까지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도 했고 어떤 때는 아예 잠을 잤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옥상에서 유모차를 태워서 아이를 재웠다.
해마다 홍고추가 나올 때면 친정어머니는 홍고추말리기에 돌입하신다. 보통 열 상자 이상 말리는데 옥상 바닥에 야외용 돗자리를 펴고 고추를 빼곡하게 깔아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옥상에 올라가서 고추를 뒤집어주어야 한다. 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친정에 다니러 가면 어머니와 고추를 말리면서 얘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한번은 한밤중에 다급한 목소리로 잔화가 걸려와서 받아보니 “빨리 건너와라.”하셔서 남편과 친정에 가보니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옥상에 널어놓은 고추가 물에 잠겨있었다. 온 식구들이 총동원하여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옥상에 있던 고추를 깔고 보일러를 돌려서 말리면서 상한 것과 덜 상한 것을 골라내느라 밤을 새웠다. 그 후에도 해마다 고추말리기가 계속되어 친정이 팔리기 전까지 오리지널 고춧가루를 먹을 수 있었다.
올해는 비가 자주 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혹시 비라도 내릴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하셨을 생각을 하니 고춧가루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友瑛 2005. October.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