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정 생각 ♣
여자가 결혼을 해도 친정(親庭)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더구나 친정이 예전 보다 경제사정이 나빠졌을 경우 딸의 마음은 더욱 안타깝다.
엊그제 남편이 회사동료의 친척이 대부도에서 포도밭을 운영하는데 포도농사가 잘 됐다고 해서 같이 가서 10Kg들이 포도 3상자를 사왔다. 그중 한 상자는 포도상태가 무른 것이 많아서 술을 담그려고 싼 값에 사왔는데 작은아들이 가르치고 있는 여학생의 집에 몇 송이를 가져다주고 내 집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친정에 갖다드리기로 했다.
큰 남동생이 사업을 한답시고 부모님이 평생 일구어놓은 상가주택 두 채와 작은 동생의 아파트를 다 날려서 집도 없이 작은 평수의 빌라에서 부모님이 이혼하고 혼자 된 작은 남동생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까 사는 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큰 남동생이 쌀은 사다주지만 부식은 다양하게 사다먹을 수 없으니 늘 밥상이 초라하다. 작은 남동생이 일정한 수입이 없고 소아마비 장애자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기초생활보호자 신청을 하면 혜택을 받을 수가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극구 반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조카들이 학교에서 학비도 감면받고 무료로 급식을 받아먹을 수가 있어서 학비로 보습학원에 보낼 수가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남편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아이들 등록금이 밀려있을 때 아들의 학교에서 학비를 감면받으려면 서류를 작성해오라고 아들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서류를 받아가지고 왔었을 때 아들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찢어버린 적이 있다. 요즘 신문보도에 의하면 억대 재산가들도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되어 수급자가 돼 있다는데 작은 남동생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보다는 자존심이 먼저인 것 같다.
지난 추석에는 큰올케가 추석명절 준비를 해서 차례를 지내고 갔고 내가 돈을 드리고 왔다. 나는 어제 남편이 포도를 갖다드리라고 해서 포도 한 상자를 비닐 백 두개에 나누어 상태가 좋은 것과 약간 무른 것을 섞어서 가지고 버스를 타고 친정에 갔다. 어머니는 “조금만 가지고 오지 왜 힘들게 많이 가지고 왔느냐?”고 하시면서 “네 아버지가 술을 끊으셔서 포도송이가 무른 것으로 술을 조금만 담고 나머지는 그냥 먹어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상태가 좋은 것은 냉장고에 넣고 무른 것을 먼저 먹어야 한다면서 몇 송이를 씻어서 부모님과 조카들한테 내놓았더니 조카들이 “고모! 포도가 더 없어요?”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올해는 일조량(日照量)이 많아 과일이 풍작이어서 내 집에서는 딸기와 수박을 자주 사다 먹었는데 친정에서는 도회지에 살면서 흔한 과일도 돈이 없어서 자주 사먹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찡하다.
아버지는 추석 며칠 전에 관절이 좋지 않으셔서 길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앞니가 4개나 부러져서 요즘에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내가 어머니한테 “틀니를 하려면 얼마나 들어요?”하니까 이백만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큰 동생은 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딸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어렵게 지내고 있고 큰올케가 직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나 역시 남편의 예전 사업 빚을 갚아나가면서 아이들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큰 아들이 학과를 바꾸기 위해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서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학원비를 대주고 있어서 여유가 없다.
여자와 친정은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가 없다. 비록 몸은 친정을 떠나있지만 마음은 항상 친정을 떠날 수가 없다. 친정 부모님이 팔순을 바라보고 있고 나 역시 오십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부모님 생각을 하면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
友瑛 2005. September.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