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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

현장실습


                                         작은아들 상원이...

                     ♠ 현장실습(現場實習) ♠


 [연세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 공학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작은아들이 8월1일부터 현장실습에 들어갔는데 학점과 연계되어 있다고 한다. 아들은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인데 ‘토질역학’, ‘구조역학’, ‘콘크리트 구조’, ‘건설재료실험’ 등의 교과목을 배우고 있다.


 아들이 배치된 현장은 삼성건설이 시공하는 '서울지하철 704공구 부천현장'이다. 집에서 전철을 타고 가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래도 우려했던 지방소재로 배치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들한테서 과외지도를 받고 있는 학생들 모두가 이번에 수능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있는데 지방으로 가게 되면 한 달 동안 과외지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제 처음 출근해서 현장을 돌아보고 더운 날씨 탓인지 얼굴이 상기되어 돌아왔는데 집에서 출퇴근하기가 힘들다고 숙소에서 먹고 자고 있다가 과외지도를 하는 날에만 집으로 오겠다고 한다. 숙소는 샤워장이 있고 식당에서 제공되는 식사도 맛있고 무엇 보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소장님 이하 사원들 중에 선배님들이 있어서 든든하다고 한다. 현장실습을 할 때는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고 상의만 작업복을 걸친다고 한다.


 아들의 대학교에서는 졸업생들이 근무하고 있는 대기업마다 재학생들을 현장에서 근무를 하게 하는 제도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데 졸업 후에 경력으로 인정되어 취업을 할 때도 유리하다고 한다. 내가 “무엇에 대한 실습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지하철공사 현장에서 지반은 무슨 공법을 사용하고 그밖에 다른 지하철공사에 관련된 사항들을 설명을 듣고 배웠어요.”고 했다. 아들은 옷을 갈아입고 가방에 속옷과 티셔츠를 싸가지고 집을 나섰다.


 작은아들의 실습 얘기를 듣다보니 내가 여고3학년 여름방학 때 실습을 나갔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내가 졸업한 [영화여상]은 1970년대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관광가이드나 호텔리어 등의 관광종사원을 육성하기 위한 특성화(特性化)학교였다. 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가정, 윤리, 사회, 음악, 미술, 체육 등 일반 고등학교와 똑같은 교과목을 배웠고, 주산, 부기, 타자와 같은 상업계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을 배우고, 또한 ‘관광과(觀光科)’에 적합한 관광법규, 관광산업, 호텔경영학개론, 관광자원 등의 전공과목들과 제2외국어로써 일본어를 배우고 영어회화와 일본어회화를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1970년 당시 내가 입학할 때는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졸업생 중에는 일본에서 열린 ‘EXPO70 박람회’에 도우미로 취업이 되었다. 나는 여행사에서 가이드(Guide)로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 보다 수입이 일반 회사원의 3배 이상이나 된다는 점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고 3학년이 되자 담임선생님이 면담을 통해서 장래 희망하는 직업을 물어보셨는데 나는 여행사에 가기를 희망했다. 친구들은 호텔리어를 많이 지원했지만 당시만 해도 여자가 호텔을 드나든다는 사실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무척 보수적이어서 나는 졸업 후에도 당시에 유행하던 미니스커트와 통 넓은 나팔바지, 짧은 핫팬츠를 입어보지 못하고 일자바지에 샤넬라인 기장의 스커트를 입었다.

 여름방학에 접어들자 나는 친구 3명과 서울 을지로에 영업소가 있던 [유신고속관광]에서 실습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업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일본인 관광객이 행선지를 물어보면 종이에 일본어와 한자를 쓰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니까 신바람이 났다. 이삼일 후부터는 수원, 안성, 온양, 천안 등 4개의 노선에 승차를 했다.


 당시에는 각 고속버스회사에서 숭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 신장 158센티미터 이상에 용모가 단정한 고속버스안내원을 모집하여 예쁜 제복을 입혔다.  당시에는 내가 배치된 [유신고속]말고도 [동양고속], [그레이하운드] 등이 있어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각 회사마다 고속버스에 자사의 로고를 달고 기사님과 안내원의 복장에서 차이가 느껴졌다. [동양고속]은 군청색 제복이었고 [그레이하운드]는 베이지색으로 기억된다. 회사 로고도 [그레이하운드]는 사냥개였다. [유신고속]은 버스에 빨간 가로줄무늬가 있었고 금색으로 도금된 독수리(Golden Eagle)가 상징이었다. 안내원 제복도 빨간색 모자와 빨간색 미니투피스였다. 정식으로 채용된 언니들의 예쁜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버스 한 대마다 각 학교에서 온 실습생들이 정식안내원과 동승했는데 실습생한테도 빨간 제복이 주어졌지만 모자는 쓰지 않았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승객을 안내를 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는데 친구 중에는 멀미가 심해서 도중하차하기도 했다. 버스가 안성, 온양, 천안 등지에 늦게 도착하게 되면 그곳에 마련된 안내원 숙소에서 자고 아침에 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도착했다. 또 며칠동안은 일본인 관광객들만 가득 태운 관광버스에 배치되어 일본어로 된 안내문을 외워서 마이크로 방송을 했다. 그런데 가이드들은 실습생이 동승한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한 달간의 실습을 마치고 2학기에 학교로 돌아왔는데 졸업을 앞두고 [동양고속]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면접을 보는 날 나는 전날 어머니가 배다리에 있는 중앙시장에서 사온 값싼 옷과 비닐가방을 메고 맨얼굴로 갔는데 서울에서 온 응시자들은 세련되게 하고 나왔다. 나는 졸업 후 이모부님의 주선으로 운수회사에 경리사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나는 가끔 사진으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내가 빨간색 제복을 입고 승객 앞에서 웃으면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마이크로 목적지와 주의사항에 대한 안내말을 하고, 멀미약과 구토할 때 사용할 비닐봉지를 나누어주던 모습을 떠올린다.


             友瑛        2005. Augus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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