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 숙인 아버지와 젊어지는 어머니 ♧
우리나라는 IMF 이후로 갈수록 경기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과거 남자들은 아버지로부터 남자의 자존심(自尊心)과 가장으로서의 권위(權威)를 세습(世襲)하면서 온갖 권리(權利)와 보호(保護) 속에서 성장했다. 그런 환경은 결혼을 하면서 한 가정의 군주(君主)로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고 가족들을 통솔하면서 사회의 중추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었다.
반면에 여자들은 어려서는 부모한테 효도를 하고, 결혼을 해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늙어서는 아들한테 의지하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배우면서 자랐다. 또한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했기에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남편과 의논하여 내조자로서만 만족해야 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이러한 전통적인 사회현상은 우리 부모님세대에서는 가능한 일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완전히 뒤바뀌어지고 말았다.
1980년대 이후 각 가정에서는 아들 딸 구별 없이 최고학부까지 교육의 혜택을 받게 하였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눈에 띠게 늘어났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곧 경제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부심으로 작용하였다. 반대로 남자들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권익신장은 비단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까지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남자들은 아버지로서 또한 남편으로서의 권위가 실추되었고 따라서 발언권도 약화되었다. 이미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가 오래다. 과거에 남편들의 허락이 절대적이었던 자녀교육문제, 주택구입, 인테리어, 자동차 구입, 재테크, 부모님 문제 등의 중요사안에 대해서도 의사결정권(意思決定權)이 아내한테 넘어가고 형식적인 보고를 받는 입장에 서 있다. 그래서 건설업계나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여성고객을 상대로 여성의 기호에 맞는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경조사(慶弔事 )때 갖다 낼 축의금(祝儀金)이나 조의금(弔意金)의 액수도 아내의 의사가 많이 반영되고 있다. 남성들은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힘이 없으니 거리를 지나다니는 남성들의 어깨가 축 쳐져있고 걸음걸이도 힘이 없어 보인다.
여성들은 사회활동으로 경제력이 생기면서 점점 콧대가 높아가고 첨단 기능을 가진 가전제품이 생산되면서 예전에 비하여 집안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낸 40~50대 중년여성들이 남는 시간에 자아실현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시작하고, 인터넷에 참여하여 정보를 습득하면서 소비취향이 젊은이와 같아지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 신문을 보니 40대 중반의 어머니와 20대 초반의 딸이 마치 자매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자녀들이 엄마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가정에 헌신하는 것을 좋게 받아들였지만 요즘에는 엄마가 늙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더 좋아한다. 나 역시 항상 바쁘게 살고 있고 자식한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 [중국어] 강의를 받기 위해 저녁에 집을 비우고 늦게 돌아오면 남편과 아이들이 저녁을 알아서 챙겨먹기 때문에 나가는 날이 더 편하다.
친정에 다니러 가면 힘이 없어 보이는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아직도 집안에서 당당하고 여유가 있다. 예전과 입장이 180도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내가 여자임에도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한다.
友瑛 2005. May.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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