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상륙작전’ 관람 ♣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참혹하고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전쟁’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지만 초등학교부터 역사시간을 통해서 북한공산주의 실체와 반공교육을 통해서 배웠다.
1945년 8월15일 대한민국은 36년간의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었지만 일본은 패망하였다.
일본은 한국전쟁 덕분에 물자를 수출하여 패망으로부터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불과 북한군의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한 달 만에 마산과 부산지역을 제외한 전국토를 빼앗겼다.
무능한 이승만 정부는 피난하려는 서울시민들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우를 범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긴급회의를 열어 유엔군을 결성하였고, 미국에서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지휘로 하여 한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휴일을 맞아 남편과 ‘인천상륙작전’ 영화를 관람했다.
나는 인천에 살고 있어서 특히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었는데 누적 관객 수가 600만 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모티프가 되어 이미 내용을 알고 있지만, 영화를 통해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인천상륙작전은 ‘더글라스 맥아더’장군의 지시로 일명‘ X-Ray 작전’이라고 부르는데, 성공확률이 5000분의 1밖에 안 되는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인천은 북한군이 띄워놓은 기뢰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수로가 좁고 간만의 차가 심해서 위험성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미군 참모부와 해군에서도 반대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5000분의 1 성공확률이 북한군이 방심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맥아더는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거짓으로 원산 등 다른 지역을 공격한다고 역정보를 흘리고, 소년병들을 배에 태워 육지로 상륙시키기도 했다.
소년병들 대부분이 안타깝게 전사했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장학수 대위를 중심으로 한 X-Ray작전과 팔미도에 상륙한 캘로부대원의 도움으로 성공으로 이끌어냈다.
‘인천상륙작전’은 남해안에서 서해안을 돌아서 인천까지 불가능한 열세상황을 역전시킨 드라마같은 실제사건이다.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34Km 떨어진 서울을 위험에서 구출하고 9월28일 서울 수복을 이끌어냈다.
만일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존재가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김정은 체제를 보면서 빨리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友瑛. 2016. August. 16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함도를 관람하다. (0) | 2017.08.05 |
---|---|
밀정 영화관람 (0) | 2016.09.19 |
덕혜옹주 영화이야기 (0) | 2016.08.06 |
부산행 영화이야기 (0) | 2016.08.03 |
귀향 영화이야기 (0) | 2016.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