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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덕혜옹주 영화이야기



                           ♠ 덕혜옹주 영화이야기

 

구한말 대한제국의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는 고종황제와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귀인은 고종의 다섯 번째 비빈으로, 덕혜옹주는 고종의 외동딸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일제는 1905년에 고종을 압박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하려 했지만, 고종이 끝까지 거부하자 이완용을 비롯한 다섯 명이 대신들이 고종을 대신하여 서명함으로써 늑약이 이루어졌다.

학창시절에는 국사시간에 을사조약(乙巳條約)’으로 배웠지만 일제의 강압적인 조약이기 때문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맞는다고 한다.

을사늑약 내용 중에 일본 정부는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고 되어있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집권하는 조선통감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암살되고 13살에 강제로 일본유학길에 오른다.

1931년 일본의 내선일치 정책에 의해 일본의 황족인 소 다케유키백작과 정략결혼을 하게 되고 1933년 딸 마사에 (정혜)를 출산한다.

덕혜옹주는 타지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다 정신질환이 생기고 정혜를 낳은 후 더 심해졌다.

 

영화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덕혜옹주는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딸 정혜와 함께 귀국신청을 하러 간다.

하지만 조선의 왕권 부활을 반대하는 이승만 정부가 황족의 입국을 거부하여 귀국할 수 없게 된다.

입국이 좌절된 후 덕혜옹주가 정신상태가 악화되자 백작은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1953년 덕혜옹주는 백작과 이혼하고, 1962년 박정희 혁명정부의장의 허가로 귀국할 수 있었다.

덕혜옹주가 귀국하는 김포공항에는 조선의 마지막 상궁들이 나와서 예의를 갖추고 맞이한다.

덕혜옹주는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내다 198978세로 사망한다.

덕혜옹주 영화를 보면서 옹주의 일대기가 아닌 불행한 조선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덕혜옹주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의 국민 모두가 일제의 속국으로서 노예처럼 살았다.

 

영화 속에서 일본정부는 덕혜옹주가 일본어로 강제노동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강제로 징용된 사람들 앞에서 우리말로 저는 조선의 황녀 이덕혜입니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고국을 잊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울컥했다.

 

友瑛. 2016. Augus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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