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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

친정아버지

 

 

                     ♥  친정아버지 ♥

 

 약 1년 전부터 파키슨씨병으로 고생하시던 친정아버지가 지난 5월20일 향년 82 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탈피하고자 혼자서 만주로 가셔서 자동차 정비와 운전기술을 배우고 돌아오셨다.

 1950년 어머니와 결혼하시고 1952년 전쟁 중에 입대한 아버지는 당시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에 운전병으로 복무하시고 제대 후에도 사회에서 트럭, 합승, 시내버스 등 운전기사로 근무하셨다. 젊은 시절 여자처럼 피부가 희고 귓밥이 두툼하고 이목구비가 수려한 아버지가 군용수송차 앞에서 찍은 모습은 내가 보아도 멋져 보였다.

 

 아버지는 가난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첫 째 할아버지가 자손이 없으셔서 양자(養子)로 들어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양자를 들이고도 공부를 시키지 않고 전답을 처분하여 여러 명의 여자를 사서 자식을 보려고 했지만 할아버지 끝내 자손을 두지 못해서 친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 많던 전답이 거의 없어지고 나서 작은할아버지 댁에서 머슴처럼 살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쯤 첫 째 할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자 작은할아버지가 오셔서 아버지한테 “그래도 네가 養子니까 모셔야 한다.”고 모시고 오셔서 5년 동안 살다 돌아가셨다. 당시 작은할아버지는 큰할아버지 몫으로 쌀 열가마를 가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호적은 큰할아버지의 양자지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친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느라 이중으로 고생을 하셨으니 스트레스가 무척 심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힘든 일을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운전만 하셨다. 엄마 혼자 떡과 생선을 팔러 다니거나 남의 집 밭일을 하느라 고생하시고 아버지는 쉬는 날 신문을 구해다 읽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드시는 모습이 어린 내가 보기에 무능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잘 해서 명문 중학교에 진학하자 아버지는 방학 때 시골에 데리고 가서 친척들한테 자랑을 하셨다.


 내성적인 성격의 아버지는 평소에 말씀이 없으시다가도 술을 드시면 자식을 한데 모이게 하고 “너희들은 공부를 잘해야만 출세할 수 있다.”고 늘 강조하셨지만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의 주사(酒邪)로 받아들였다.

 어머니한테 들은 바로는 아버지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만주로 가서 기술을 배우셨다고 하는데 자존심이 강해서 운전을 하다 업무상 정지를 받으면  끼니거리가 없어도 막일을 하려 하지 않으셨다.

 운전기사 월급이 많지 않은데도 친할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은 아버지가 도시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여 할머니를 앞세워 번번이 돈을 요구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열두 살 터울의 막내남동생이 생기자 무척 좋아하셨지만 백일 무렵 소아마비로 판명되자 근무하지 않는 비번에는 거의 술을 드시고 만류하는 어머니한테 손찌검까지 하셨다.

 아버지는 엄마한테는 폭군남편이었지만 자식들한테는 한 번도 매를 들거나 욕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한테 늘 불만이었다.


 두 딸이 여상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형편이 나아지자 땅을 사고 상가주택을 지어 임대업을 하면서 동네에서 방범위원과 새마을 관계위원으로 위촉받아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존경스러웠다.

 그 후부터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외손자가 태어나자 보행기와 유모차를 밀어주시고 승용차에 손자를 태우고 수봉공원에 산책을 다녀오시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손자들의 학교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여 격려를 하시고 용돈과 맛있는 것을 사주셨다.

 

 아버지는 큰남동생이 사업을 시작하여 10년 만에 재산을 거의 탕진하자 다른 동네로 이사하면서 동네사람과 친척들을 멀리하고 집안에서 운둔생활을 하다시피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성당으로 인도하여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아버지는 관절이 좋지 않으셨는데 2009년 여름부터 갑자기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입원하면서 검진을 받은 결과 ‘파키슨씨병’으로 판명되어 투병중이었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아버지가 주무셔서 어머니하고만 사진을 찍었는데 17일 낮에 어머니한테서 “아버지가 욕창이 심해서 구급차를 타고 종합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친정에 전화를 해 보니 어머니가 “입원시키려고 했는데 병실이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아버지가 드실 요구르트와 두유, 욕창에 좋은 약을 사서 친정에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을 떠서 드시고 있었다. 파키슨씨병으로 판명되고부터 아버지는 혼자서 수저를 들지 못할 정도로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20일 오전 8시40분쯤 출근하여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큰남동생이 전화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날 욕창이 번져서 피부과에 다녀왔고 찬바람을 쏘인 후 열이 심했는데 밤새 고생하다 겨우 주무셨다고 한다.

 20일 아침 일찍이 어머니가 아버지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 죽을 끓여서 드시려고 하니까 숨이 가쁘고 고르지가 않아서 옆방의 막내동생을 부르고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대원이 아버지를 보고 아무래도 돌아가실 것 같다고 했는데 급하게 병원에 도착해 보니 5분 만에 의사가 나와서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판단했다.


 나는 순간 앞이 흐려지면서 “상조회에 가입했니?” 물어보니 가입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가입한 상조회 서비스를 이용하자고 했더니 성당으로 모실거라고 했다.

 나는 남편과 동창생 총무한테 알리고 외근한 사장님한테 사실을 말했더니 그냥 들어가라고 했지만  종합소득세 자료를 마감해서 세무사사무실로 갖다내야 하기 때문에 오후 2시가 지나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나는 집에 들러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성당 영안실로 달려갔다. 올케가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갔고 여고동창생들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나도 아버지 영정 앞에 서니 쉴 사이 없이 눈물이 흘렀다.

 친정어머니는 추리닝 바지에 아버지의 양말을 신은 모습이 급하게 병원에서 영안실로 온 것이 역력했다. 주방에 음식들이 채워지고 도우미를 고용하여 찾아오는 손님을 맞았다. 남동생과 내 동창생이 화환을 보내왔고 내가 근무하는 사장님도 화환을 보내고 직접 조문을 했다. 작은아버지 두 분이 형님을 기리면서 한 없이 울었고 외가에서도 외삼촌과 외숙모, 이모, 사촌형제들이 찾아왔다.


 21일은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들이 찾아와서 분주했다. 나는 다시한번 아버지 영정 앞에서 한참동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아버지한테 서운하게 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오후 2시에 천주교식으로 염과 入棺을 하고 가족들이 아버지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고 있었다. 나도 "아버지 이제는 편안히 쉬세요..“하면서 울었다. 아버지의 몸은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22일 오전 8시40분에 出棺이 시작되었다. 나하고 세 살 터울인 막내삼촌이 아버지 같은 큰형님한테 좋아하시는 술을 한 잔 따르고 앉아서 울었다.


 아버지의 시신은 인천시립화장장 ‘승화원’에서 2시간동안 화장하여 유골을 시립 납골당으로 모셨다. 친정에 들어서니 냄비에 아버지가 아침에 미처 드시지도 못한 죽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니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24일은 오전 6시에 성당에서 연미사를 지내고 친정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27일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일주일 되는 날이다. 나는 어머니가 외로우실까봐 매일 통화를 했고 올케가 어머니를 모시고 한의원에서 원기를 회복하는 한약을 지었다.

 안방이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에서 어머니는 허탈한 모습이었다. 문갑 위에 놓인 영정속의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어머니를 잠시라도 모시고 싶다고 해서 수속을 밟는 중이다.


 아버지! 어머니 걱정을 하지 마세요.

 저희 형제들이 편안하게 잘 모시겠습니다.


          友瑛. 2010. May 28

 

 

 

                   생전의 아버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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