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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

교육비와 부모력

 

                        ♥  敎育費와 父母力  ♥


 우리나라의 가계부채(家計負債) 상환능력이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가계부채는 1997년 IMF 이후 계속 증가하여 지금은 660조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서 각 가정마다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가계부채는 주로 주택 담보대출과 전세자금 대출, 직장인 대출,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 생활비 대출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최근에는 학자금 대출로 교육비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아서 문맹(文盲)이 거의 없는 나라에 속한다. 우리 부모들은 한국동란 후 보릿고개를 겪으면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식의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요즘에는 교육 환경에 있어서도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이 강하다.  이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앞날을 좌우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하지만 최근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아직까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40%나 된다고 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성적이 절대로 비례하지 않는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작은아들이 과외지도를 받지 않고도 소위 SKY로 불리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올해 4학년인데 얼마 전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합격하면 4학년 2학기 기말시험을 치르고 나서 인턴사원부터 시작하게 된다.

 

 남편은 인문계고등학교 출신이고 나는 여상 출신으로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해서 늘 학력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당시는 여자가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사치로 알 만큼 진학률이 낮았는데 친정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으셔서 다행히도 나와 여동생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공부는 적절한 시기에 맞추어 습득해야만 비로소 가치 있게 활용할 수 있다. 나는 늦깎이로 [방송대학교]를 졸업하여 학력콤플렉스를 극복했지만 사회에서 활용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두 아들이 어려서부터 TV나 오락게임에 몰두하지 않고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전에 유치원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도 두 아들이 아무 탈 없이 착실하게 공부를 잘 해주었다.

 큰아들은 남편을 닮아서 음악적 소질이 많고 작은아들은 미술에 솜씨가 많다.  큰아들은 어려서 음악학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음악에 대한 해석을 잘 하고 성량(聲量)이 풍부하여 노래를 잘 한다.


 큰아들은 IMF 때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한창 어려울 때 고등학교 시절을 맞이했는데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과 관계없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내색을 하지 않고 이공계대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군 입대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처음으로 부모한테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리 부부는 공대를 나와서 안정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랐기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아들의 뜻이 워낙 확고해서 허락해주었다. 아들은 다니던 A공대를 2년 만에 중퇴하고 수능시험을 다시 치르고 2008년 2월에 전문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했다. 전공이 보컬이지만 전자 기타와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노래하고 작곡도 할 수 있다.


 큰아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일본어학원을 다니고 일본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일본어를 제법 능숙하게 할 정도가 되었고, 준비기간을 거쳐 28일 오후 12시 55분에 일본 요코하마로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5시경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직장인대출을 받아 아들의 왕복 항공요금, 어학원 교육비와 기숙사 비용, 노트북, 여행가방, 의류 등 천 만원이 넘는 필요한 경비를 지원해주었고,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생활비를 마련해가지고 갔다.


 친정어머니가 처음에는 “너는 아직도 빚이 남아있는데 아들이 해달라는 대로 하느냐?.”고 책망하시기에 “예전에 내가 교육대학을 나왔더라면 교사로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기회를 놓쳐서 지금도 아쉬워요. 그래서 원 없이 밀어주는겁니다. ”라고 했더니, “그래. 사실 나도 네가 아들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뒷바라지를 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남편의 사업 빚은 천천히 갚으면 되지만 공부는 젊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꺼이 지원한 것이다.

 아들이 떠나고 빈방을 청소하러 들어가 보니 당장에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가서 책과 컴퓨터가 책상 위에 놓여있고, 옷걸이에 옷이 그대로 걸려있다.

 

 큰아들이 올해 서른 살의 결혼적령기이다. 아들이 결혼을 미루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는 만큼 어학연수 기간을 마치고 계획대로 음악대학교에서 음악 비즈니스 (Music Bussiness) 분야를 폭넓게 공부를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友瑛. 2009. Septemb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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