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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

전쟁과 평화

 

 

 

 

                               ♥ 戰爭과 平和 ♥


 나는 현재 [방송대학교] 중문학과에 재이수중인데 2009년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니까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일시에 날아가 버리고 날아갈 것 같이 홀가분하다.

 나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휴일에도 가족을 챙기기보다 내가 할 일에 급급해서 몸은 집에 있어도 국수를 삶아줄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는데 오늘은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끓여서 잔치국수를 만들었더니 맛있게 먹어주었다.

 가족들도 내 생활패턴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기대하지 않는다. 지난 일주일은 그동안 미루어놓았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역시 바쁘게 살았다.

 직장에서는 2009년 상반기 매출 현황표를 만들고, 앞으로 사용할 간이영수증도 10권이나 명판과 사업자도장을 미리 찍어두었다.


 오늘은 10시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개운하다. 모처럼 시험전쟁에서 해방되어 평화를 찾은 것이다. 사람이 잠이 부족하면 저항력이 떨어지고 수명도 짧아진다고 하지만 내가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1994년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수면시간을 줄여가면서 학생, 주부, 직장인의 역할을 하다 보니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등록을 하면 언제나 내가 학습시간표를 짜고 그대로 실천해 왔기 때문에 집에서나 직장에서 늘 ‘시간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고, 밤에는 ‘잠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一人多役이 가능했다.


 흔히 공부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언젠가 여고동창생의 말처럼 공부를 해서 전공을 살릴 수 있으면 좋지만 배우기만 하고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이 전공을 살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부는 지식을 쌓는 일이고, 자신이 많은 것을 앎으로써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인내심과 자기 수양을 쌓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TV프로그램 중 퀴즈프로를 즐겨 시청하고 있는데 내가 ‘국문학과’에서 배운 작품과 작가에 관한 문제와 ‘법학과’에서 배운 법에 관한 문제가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아!”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남편은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예전에는 함께 TV를 시청하다가 내가 발언을 하면 대뜸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하면서 면박을 주어서 실업계를 졸업한 내가 열등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노력하는 것을 가상하게 여겼는지 시험이 임박하여 가정에 소홀하더라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조심하고 있다.

 

 지난 7월5일 새벽 1시에 나는 거실에서 막바지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취미생활로 시작한 낚시를 가기 위해 거실로 나와서 낚시가방과 도구들을 챙기느라 부산스러웠다. 일행이 2시경 집근처로 오니까 시간에 맞춰서 나와도 되는데 한 시간이나 미리 거실로 나온 것이다.

 내가 “아직 출발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방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면 안 돼요? 나는 내일아침부터 기말시험을 치르는데 지금 당신 때문에 집중이 안 돼서 그래요.” 했더니 “ 누가 보면 대단한 시험을 치르는 줄 알겠다. 마누라가 무서워서 거실에도 있지 못하니.” 하면서 역정을 냈다.

 나는 차라리 안방에 들어가서 미리 잠을 자고 남편이 나간 후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남편이 자기를 무시한다면서 안방까지 따라 들어와서 “그래. 나는 낚시를 안 가면 되고, 당신은 시험을 포기하면 되겠네. 그래 같이 망해보자.”하고 예전 성격을 드러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남편은 전화를 받고 낚시를 떠났다. 나는 잠을 설쳐서 막 잠을 청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남편이 “아까는 미안했어. 잠을 자고 일어나서 오늘 시험을 잘 치르고 와.”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도 순간적으로 나한테 서운한 마음에 화를 냈지만 시험을 앞둔 나한테 무척 미안했던 것이다.

 나는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남편이 “ 오늘 시험을 잘 치렀어?”하고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알았어요.”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오히려 미안했다.

 오늘도 내 욕심때문에 가족들을 소홀하게 하고 외롭게 했나 보다.

 

 한잠을 푹 자고나서 시험 답안을 맞추니까 무사히 학점을 이수하였다. 나는 2학기에도 재이수를 해야 하고 방송대를 졸업하더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또 다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것이다.

 

   友瑛. 2009. July.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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