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결벽증(潔癖症) ♠
결벽증이란 ‘남달리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증세’를 말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완벽하게 해야만 마음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이러한 나의 성격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달동네에 살면서 공동수돗물을 길어다 먹던 시절에도 자주 씻고 깨끗하게 청소를 했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를 없앤다고 크레졸을 사다 자주 뿌렸는데 한번은 아버지께서 담뱃불을 버리다가 불이 날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너는 지나치게 깔끔한 것도 병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는 포플린으로 만든 교복의 하얀 칼라에 풀을 빳빳하게 먹여서 입고 다녔고, 여고시절에는 진회색 맞주름스커트였는데 매일저녁 잠을 잘 때 스커트 주름을 굵은실로 꿰매어 이불 밑에 깔고 잤는데 아침이면 주름이 꼿꼿하게 서있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말없고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성격의 나를 두고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가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자 집안에서 뛰어다니는 것과 어지럽히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과자를 먹일 때는 쟁반에 과자봉지를 담아서 먹게 했고, 옷은 행거에 똑바로 걸려있어야 했고,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서 신발을 벗을 때는 두 짝이 똑바로 놓여져야만 했다. 친척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얌전하게 앉아 있어서 어른들이 “가정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고 칭찬하셨다. 아이들은 엄마인 내가 무서워서 말을 잘 들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습관이 되어 시키지 않아도 각자의 방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가끔씩 전철을 탔을 때 어린 아이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의자에 올라가거나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데 부모가 제지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대견하게 쳐다보는 것을 볼 때 한심하다고 생각된다. 식당에서도 밥상 주위를 뛰어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가 말리지 않고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 내 집에서 엄격한 아이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귀여움을 받는 법이다.
친정어머니는 예전에 한 달에 한번씩 옥양목으로 된 이불호청을 양잿물에 삶아서 풀을 먹이고 다듬이 방망이로 두드려서 꿰맸다. 팔순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풀을 먹이지 않지만 여전히 깨끗한 이부자리와 집안 살림을 깔끔하게 하신다.
내가 결벽증세가 있는 것도 깔끔하신 어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나는 하루에 세 번 이상 양치질을 하고, 씻어 놓은 그릇을 음식을 담기 전에 다시 한번 씻는다. 세탁일지를 만들어 놓고 침대커버와 식탁커버는 한 달에 한번씩 세탁을 하고, 베갯잇은 매 주마다 세탁하고 있다. 몇 년 동안 기록했더니 이제는 노트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날짜를 알 수가 있다.
나는 청소와 세탁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정리에도 항상 신경을 쓴다. 가계부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약속시간을 칼같이 정확하게 지키는 편이다.
나는 자투리시간을 아껴서 잠시도 헛되게 보내지 않는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는 주로 화장실을 이용한다. 교통카드를 미리 충전해놓고, 시험을 볼 때는 전날에 미리 교재와 학생증을 챙겨두고, 볼펜이나 컴퓨터용 사인펜을 꼭 두 자루씩 준비한다. 만일 답을 쓰다가 볼펜이나 사인펜의 글씨가 잘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람시계를 맞출 때는 혹시 시계가 울리지 않을까봐 시계 두 개를 동시에 맞추어놓는다. 밤에 잠자기 전에는 방마다 불이 켜져 있나 살펴보고, 컴퓨터도 확인하고, 현관문을 확인한다.
결벽증과 완벽함은 서로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 같다. 나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가족들이 피곤하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습관이 돼버려서 그런지 한 번 결정된 성격은 평생을 간다.
友瑛 2005, November.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