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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와 삶

달동네의 추억들

 

        ♣  달동네의 추억(追憶)들... ♣


 追憶은 지난 일을 되새기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씩 어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흔히 가난한 산자락에 위치한 동네를 가리켜 ‘달동네’라고 부른다. 달이 가장 잘 비추이는 곳이라서 그렇게 불렀을까?

 나 역시 어려서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던 달동네 출신이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많은 사상자와 전쟁고아와 이재민(罹災民)을 발생시켰고 그 당시에 태어난 전후세대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독한 가난을 체험해야 했다.


 나는 주말을 맞아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 옛 수도국산 자리에 ‘달동네 박물관’이 생겼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직접 보기 위해 찾아갔다. 이곳은 1999년에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달동네를 철거하면서 주민들이 수십 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여 ‘달동네 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지겹도록 겪었던 일이고 벗어나고 싶었던 터라 생각하기도 싫어질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서 예전의 향수(享受)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송현시장 앞에서 과거의 판잣집 분위기에서 벗어나 깨끗하게 정리된 도로를 거슬러 올라가니 고층아파트 단지가 있고 가까이에 근린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송현근린공원’ 바로 옆에 항구에 정박한 배의 형상을 한 ‘달동네 박물관’이 세워져있다.

 ‘달동네 박물관’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데 연면적 300여 평에 지하1층과 지상1층에 전시실을 만들어놓았다.

 ‘달동네 박물관’은 당시의 생활공간을 재현한 구역과 당시의 생활용품을 진열한 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상1층에는 철거를 하기 전의 당시 생활모습을 찍은 사진이 벽보처럼 전시되어 있고, 지하1층에는 말 그대로 체험전시관이다.

 

 전시관 입구에는 예전에 상영했던 영화포스터가 붙어있고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놓여있다.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갑자기 어두컴컴한 조명이 반겨준다. 아마도 예전에 어둡게 살았던 달동네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촉수(燭數)가 낮은 전등을 설치한 것 같다. 나는 디카를 이용해서 전시된 소품을 빠짐없이 찍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주위가 어두워서 感으로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전시관에 설치된 생활용품들이 오픈 셋트장에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라 예전에 집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을 옮겨다 놓은 것이어서 마치 내 집 물건처럼 애정이 간다. 비좁은 방을 들여다보니 마치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4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좁은 곳에서 어떻게 그 많은 식구들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모 방송사에서도 비디오카메라로 계속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나한테 다가와서 인터뷰를 요청하여 응했다.

“이 곳에 와서 보니까 어떤 점이 가장 인상이 깊었습니까?”

“ 제가 예전에 부처산이라는 달동네에 살았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비좁은 방에서 어떻게 많은 식구들이 살았는지 신기하게 생각되네요.”

“ 다른 점은 또 없습니까?”

“ 전시된 교복을 보니 학창시절 생각이 납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나는 관람객한테 부탁하여 벽화로 재현한 배경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경기도 인천시 남구 도화동 산24번지 길파7반 오구목골...☞

 

 지금은 인천이 광역시로 바뀌고 산동네가 헐려서 인천대학교가 들어섰지만 내가 어려서 살고 있었던 당시에는 부처산 중턱을 깎아서 판자집이 다닥다닥 지어졌는데 우리 집은 그 중에서도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공동수도에서 수돗물을 길어다 먹었다.

 부모님은 답동에서 살다 집이 헐리게 되자 부처산자락에 체비지(替費地)를 받았는데 어머니는 미음字(ㅁ)로 집을 지어 안방과 마루를 사용하고 방 다섯 칸에 작은 부엌을 달아서 사글세를 놓아서 생활비에 보탰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방이 갖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사글세가 줄어들면 안 된다고 끝내 방을 내주지 않으셨다.

 

 나는 맏딸이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양철 물통에 지게로 물을 길어오기도 했고, 연탄을 들일 때는 한 번에 새끼줄로 4장씩 양손에 들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매일 아침이면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주시면 앉아서 불을 때야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뒷산에 가서 냉이를 캐고 토끼풀을 뜯어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저녁에는 호야라고 불리는 등잔에 석유를 넣고 불을 붙였고 아침에는 그을음이 생긴 호야를 벗겨내어 비눗물에 흔들어서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이 내 임무였다.

 겨울이면 나는 백포기가 넘는 김장을 하는 날 동네 아주머니들이 도와주러 오면  밥을 짓고 국을 끓여내는 것을 도맡아 했고 어머니와 둘이서 털실로 동생들의 스웨터나 목도리, 조끼, 장갑과 양말을 열심히 뜨개질을 했다.


 나는 잠시 지난 시절을 상기하면서 ‘달동네 박물관’에서 예전에 내가 접했던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뭐라고 형언(形言)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살라고 하면 아마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갈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전혀 기억조차 없는 생소한 것들이라 그런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디카나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友瑛 2005. November. 10

기념 스탬프

달동네 삶의 편린들에 관한 안내문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개관 안내문

내가 사인한 메모가 있는 메모판 (가장 가운데에 있는데 클릭하면 글씨가 보입니다.ㅎㅎㅎ)

 

 

 

 

전시관에 전시된 사진들...

달동네 박물관 안내 팜플렛

달동네 박물관 전시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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