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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적표 세탁


 

                  ★ 성적표 세탁 ★


 세탁(洗濯)이란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한동안 부패한 공직자들이 뇌물(賂物)로 받은 돈을 근거를 없애기 위해 ‘돈세탁’을 하여 이 말이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는데 이번에는 대학교에서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쌓아야 할 학생들이 좀더 유리한 학점을 받기 위해 재수강(再受講)을 하여 성적표를 세탁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6과목을 이수(履修)해야 하고,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한 이후에도 까다로운 졸업논문(卒業論文)에서 합격해야만 비로소 졸업식에서 학사학위(學士學位)가 주어진다. 요즘처럼 경제상황이 어려운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학생이 없을 것이다. 아르바이트와 학과공부를 병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학점이수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점만 이수했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졸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점(學點)은 각 과목당 F만 없으면 이수가 되지만 A+에서 B. C. D. F...까지 매겨지는 평점(評點) 때문에 학생들은 점수관리에 촉각(觸覺)을 곤두세우게 된다. 평점이 낮으면 대학원에 진학을 하거나 입사시험을 치를 때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과락(科落)한 과목에 대하여 한 학기가 끝난 후 방학기간 중에 ‘계절학기’라는 이름으로 재수강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런데 재수강은 평점이 C+이하인 과목에 한정되기 때문에 B-를 받은 학생이 차라리 C를 달라고 담당교수한테 부탁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재수강을 해서 A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과목을 여러 번 공부하고 같은 시험을 치르다보면 아무래도 처음 보다는 점수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재학하고 있는 [방송대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서 절대평가제(絶對評價制)를 실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60점 이하는 무조건 F가 매겨지고, 60점부터는 D학점, 70점부터는 C학점, 80점부터는 B학점,  90점 이상이면 A-에서 A0, A+이라는 점수가 매겨진다. C+이하를 받은 과목은 재수강을 할 수 있고 ‘계절학기’에서 다시 시험을 치를 수가 있다. 그런데 ‘계절학기’과목은 기초전공과목과 교양과목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리 잘 알아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4학년이 되면 자신의 평점을 높이기 위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했더라도 ‘졸업유보제’를 신청하여 재수강을 할 수 있다.


 작은 아들이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서는 ‘名門大學校’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평점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대학원이나 유학을 떠나고 대기업에 취업을 하는데 좋은 성적은 필수사항(必須事項)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상대평가제(相對評價制)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평가는 일정한 분포도를 정하여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점수가 높아도 소용이 없다. 아들도 평점을 B이상 받고 있지만 1학년 때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아보았고 그 이후는 성적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복학한 선배들이 평점이 낮은 과목만을 골라서 재수강을 하기 때문에 전과목의 시험을 치르는 후배들 보다 당연히 평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아들도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을 하면 재수강을 해서 평점을 높이겠다고 한다.


 그런데 재수강은 이미 강의를 여러 번 들었던 학생들과 처음 듣는 학생들과는 이질감(異質感)을 초래(招來)하게 되어 수업분위기가 산만해질 수 있다. 그리고 어려운 교양과목과 저학년에 개설된 과목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즐기다가 고학년에 올라가서 재수강을 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재수강에 대한 폐해(弊害)를 우려하고 있다. [부산대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학점포기제’가 ‘학점인플레’를 양산하게 되어 오히려 지방대 학생들의 취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2001년부터 운영하던 ‘학점포기제’를 올해 없앴다고 한다.

 [서강대학교]에서는 재수강을 하더라도 최고 B학점 이상을 주지 않고 성적표에 R(재수강)이라는 표시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무제한으로 수강을 할 수 있고 성적표에 R표시를 하지 않고 있는 다른 학교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많다.

 유명한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재수강을 하더라도 처음 이수한 평점을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애초부터 모든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재수강을 할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서울대학교가 세계에서는 순위가 밀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요즘 본고사 부활문제로 시끄러운데 학생들을 받아들일 때 뿐만 아니라 재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올바르게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제 대학교도 달라져야 한다.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공부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고 적어도 고3수험생 시절만큼만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에서는 재수강이 없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하지 않았던가?


               友瑛                  2005. July.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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