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華飯店]의 알림판
♣ 금화반점(金華飯店) ♣
내가 살고 있는 ‘인천광역시’에는 다른 지역 보다 특히 화교(華僑)가 많이 살고 있다. 華僑란 ‘해외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는 중국사람’을 말한다. 마치 우리나라 교포(僑胞)들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무리를 지어 살고 있으면서 ‘Korea Town'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인들도 ’차이나타운(China Town)‘을 형성하여 학교를 설립하고 자치구(自治區)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인천역’앞에는 ‘중국인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중국문화원(中國文化院)’이 있는데 옛날 가옥이 아직도 그대로 있고 중국어로 된 상점 간판들이 즐비하게 붙어있어서 마치 중국에 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화교들은 특히 상술(商術)에 뛰어나다. 오래 전에 내가 처음 그 지역을 갔을 때 내가 찾아가는 길을 잘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어느 할머니가 가게 앞에서 앉아 있다가 내 앞으로 오시더니 “어디를 찾아요?”하기에 약도를 보여드리니까 건물을 돌아가는 모퉁이까지 친절하게 같이 걸어가면서 알려주셨다. 나는 그 할머니가 워낙 우리말을 잘 하시기에 화교인줄 몰랐는데 볼일을 보고 집에 와서 남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그 동네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화교일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억양(抑揚)이 약간 이상했던 것 같았다.
중국어(中國語)를 한어(漢語)라고 부르는데 ‘사성(四聲)’ 즉 4개의 성조(聲調)가 있어서 경상도 말처럼 악센트가 강하다. 한 집에서 중국어를 배우면 앞집, 뒷집, 옆집까지 다 들려서 같이 배울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시끄럽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대화를 하는 곳에 가면 마치 시장터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가까운 곳에 [金華飯店]이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친정 소유의 3층짜리 상가건물이었는데 2000년에 주선생(周先生)이라는 화교가 구입하여 수리를 하고 음식점을 개업했다. 중국에서는 姓氏 다음에 ‘先生(xiansheng)’이라는 호칭을 붙이는데 우리나라처럼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아무개씨’에 해당하는데 영어로 ‘Mr.’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일반 선생님의 호칭은 ‘老師(laoshi)’라고 부르고 대학교수(大學敎授)는 ‘敎授(jiaoshou)'라고 부른다. 주선생은 화교 2세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올해 55세이고 부인은 50세이다. 딸은 대만에 있는 [政治大學校]를 나와서 교편을 잡고 있고 아들은 수원에 있는 [경기대학교]를 졸업했다.
우리집은 가끔씩 중화요리(中華料理)를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주로 아들이 배달을 하고 아들이 없거나 바쁠 때는 주선생과 부인도 배달을 다닌다. 자기 소유의 건물에다 2층에는 사글세방이 다섯 개나 있어서 임대료가 제법 많이 나오는데도 종업원을 두지 않고 직접 배달을 한다. 가게 밖에는 언제나 낡은 오토바이가 세워져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온 식구가 [金華飯店]의 ‘VIP Room’에서 식사를 했는데 둥글고 긴 원형 테이블에 용이 그려져 있는 중국풍(中國風)의 액자와 장식품이 눈길을 끌었다.
음식점 건물밖에는 빨간색 등이 여러 개 걸려있고 ‘China Restaurant'이라는 영문간판도 있다. 음식값은 동네의 다른 중국집 보다 오백 원에서 천 원 정도 비싸지만 음식 맛도 다르고, 후식(後食)으로 뜨거운 커피가 준비되어 있고, 언제든지 지나가다가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가라는 영업전략(營業戰略)도 한 몫을 한다. 음식을 배달할 때의 옷차림도 말끔하고 우리말이 유창해서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교인줄 몰랐다.
[金華飯店]이 개업한지 5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처음과 변함이 없다. 요즘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외교문제가 껄끄럽지만 개인적으로 華僑를 만나보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경(國境)을 초월(超越)한 이웃으로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면 언제나 먼저 인사를 한다. 요즘 우리나라는 경기침체(景氣沈滯)로 오랫동안 불경기(不景氣)가 계속되고 있는데 화교들의 근면성(勤勉性)과 자린고비정신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友瑛 2005. June.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