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운 사람 ♥
남편이 2017년 4월 폐암으로 진단받아 10개월 동안 항암치료와 1개월간 15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회복되지 않아서 의사로부터 치료불가 판정을 받고, 2월27일부터 요양병원에 입원하였다.
천주교 신자인 초등학교 친구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러 왔다가 대세를 권유했다.
대세(代洗)는‘세례를 받고 싶지만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 없는 경우 사제를 대신해서 수녀나 신자가 방문해서 세례성사를 행하는 의식’인데 성당에 교적서를 제출하면 신자로 인정된다.
섬망(譫妄)은 ‘환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환자가 불안감과 초조감을 느껴서 특히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주사기를 빼내는 증세’인데 남편은 장기간 항암치료로 인하여 섬망이 심했다.
나는 매일 퇴근하면 곧장 요양병원에 들러서 물티슈로 손과 얼굴을 닦아주면서 대화를 했다.
남편은 섬망 외에 치매증세를 보이면서 늘 잠을 자고 있다가, 깨우면 눈을 뜨고도 의식이 또렷하지 못해서 대화를 하지 못했다.
간호사가“환자가 말을 못해도 들을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하세요.”한다.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요.”라고 반복했다.
남편은 알아들은 것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4월4일 일본에 거주하는 큰아들이 집에 와서 머무르고 있었다.
4월6일에는 여동생이 오후에 다녀가고, 나는 퇴근 후 남편 곁에 있었다.
남편이 평소와 달리 손이 차고 얼굴이 창백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간호사가 면회를 요청해서 간호사실에 갔더니 “환자가 임종이 다가올 것 같으니 영정사진과 갈아입을 옷도 준비하시고 전화연락을 드리면 곧바로 오셔야합니다.”했다.
친정 남동생부부와 조카들이 병실을 찾아와서 남편의 손을 잡고 “고모부 빨리 회복하세요.”라고 말했는데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4월7일 나는 평소처럼 출근했는데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환자가 새벽에 호흡곤란이 와서 임종실로 옮겼으니 빨리 오세요.” 한다. 나는 직장 대표님과 두 아들한테 연락을 했다.
매장 문을 닫고 집에 들러서 영정사진과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겨서 요양병원에 갔다.
직원의 안내로 임종실로 들어갔는데 남편은 눈을 감고 있다.
“당신! 내가 왔어요.”하니까 눈을 뜨고 입술을 움직이더니 눈을 감는다.
나는 간호사한테 “남편이 잠을 자는 건가요?”하고 물으니 “곧 임종할 것 같은데 아드님은 오고 있나요?”한다.
연락해서 오고 있다고 하니까 의사선생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나간다.
잠시 후 의사선생님이 와서 시계를 보더니 “오전 11시20분에 사망했습니다.”라고 사망선고를 내린다.
나는 아들한테 사망사실을 알리면 운전하다가 실수를 할까봐 알리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가고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잡고 울었다.
남편은 2018년 4월7일 오전 11시20분에 평소처럼 잠을 자듯 평온한 모습으로 가족 곁을 떠났다.
두 아들은 남편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늦게 도착했다.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정산하고 사망진단서를 건네받았다.
아들이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차가 와서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는 아들과 승용차로 뒤따랐다.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와 계약하고 천주교식으로 빈소가 준비됐다.
아들이 부고문구를 만들어서 남편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에 보내고, 나도 성당과 동창이나 친척들한테 문자를 보냈다.
저녁시간부터 발인하는 시간까지 성당에서 신도들이 연이어 찾아와서 기도와 성가를 부른다.
성당으로 이동하여 장례미사를 치르고, 영구차로 신도들이 동승하여 화장장과 납골당까지 천주교식으로 거행했다.
삼우제를 성당에서 연미사로 했다.
큰아들은 8일 일본으로 출국하기로 돼있었는데 항공편을 취소하고, 삼우제가 지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나는 작은아들과 함께 남편이 생전에 거래하던 은행마다 방문해서 계좌를 해지하고 현금카드를 반납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유족연금을 신청했다.
보장성보험에 가입한 보험회사에 서류를 보내서 암 사망보험금을 신청했는데 사흘 만에 입금됐다.
남편은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건강이 회복되면 낚시를 가려고 낚시 바늘에 실을 꿰어놓았다.
남편이 떠난 후 낚싯대와 아이스박스 낚시 도구들을 시댁조카와 남편 친구한테 나누어 주었다.
남편이 입던 옷가지와 신발 등은 봉투에 담아 폐기했다.
거실 벽에는 가족사진 속에 남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출퇴근할 때나 외출할 때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 당신! 출근합니다. 다녀왔어요. 오늘은 친구 **를 만나고 왔어요.”라고 대화를 한다.
남편 휴대폰을 해지했지만 내 휴대폰 속 남편 카톡에는 남편과 주고받은 사진과 문자가 남아있다.
남편이 의식이 있을 때 전화 통화하면서 녹음한 남편 목소리가 여러 개 저장되어 있는데,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면 한없이 남편이 그리워진다.
남편이 요양병원에서 연명치료를 할 때 찾아가면 의식이 없어도 남편의 자는 모습이라도 불 수 있고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남편한테 달려갈 수 없다.
거실에는 아들의 졸업식과 결혼식에서 남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지만 사진 속의 남편은 가족 곁에 영원히 함께 하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간직하면서 남편과의 소중한 추억을 기억할 것이다.
友瑛. 2018. April.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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