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동생 가족의 귀국 ♣
나하고 세 살 터울인 여동생이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완전히 귀국했다.
여동생은 1995년 제부 친구가 사는 괌으로 건너가서 살다, 1999년 미국 원싱턴으로 옮겨가서 현재까지 미국 국적은 취득하지 않고 한국인 신분으로 살아왔다.
동생부부가 초기에는 고생이 많았지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지하에 주차장이 있는 고급주택을 마련하고 승용차도 소유하면서 생활기반을 잡아 어려움 없이 잘 살아왔다.
그런데 작년 6월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대장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왔다.
나는 여동생한테 ‘카카오 톡’을 통해서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를 해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작은아들이 결혼하고 신혼 여행지를 미국으로 정하면서 여동생부부를 만나고 인사를 드렸는데, 제부가 “양약으로도 병이 차도가 없으니 한국에서 형제들과 가까이에 살면서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2월 7일에 여동생부부가 먼저 귀국하고, 조카가 남아서 나머지 정리를 하고 3월1일 오후에 귀국했다.
남동생이 공항까지 마중 나가서 짐을 싣고 친정으로 가서 합류했다.
나도 퇴근 후 친정에 가고 작은아들도 서울에서 외가로 도착했다.
여동생 가족이 도착하고 가장 기뻐하시는 분은 역시 친정어머니시다.
올해 84세로 연로하셔서 관절이 좋지 않으신데 4남매가 모두 모여 살게 됐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하신다.
제부는 사돈어르신 두 분이 돌아가셨지만 남동생과 여동생이 살고 있는 강원도 춘천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최근 단식원에서 민간요법을 배워 요즘은 죽에서 밥으로 식단을 바꾸었다고 한다.
지난달 제부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동안 고기를 일체 섭취하지 못해서 피골이 상접하여 측은하게 보였는데, 차차 안색이 밝아지고 있고 여동생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조카는 영어에 능통하니까 카투사에 지원하고 싶다고 하는데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국방의무를 다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다가오는 어버이날과 친정어머니 생신에는 4남매가 모두 모여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것이다.
友瑛. 2014. Marc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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