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대왕 영릉(英陵) 관람 ♥
1972년 UN총회에서 채택된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은 ‘인류의 소중한 文化 및 自然遺産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세계유산위원회가 전담하여 세계문화 및 보호협약에 따라 정해진다.
2009년 6월30일 조선 왕릉(王陵)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登載)되었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왕조는 유교를 바탕으로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삼아 조상에 대한 숭모(崇慕)를 중요시하였다.
이처럼 한 왕조의 왕과 왕비의 능을 어느 하나도 훼손시키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유산으로 문화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조선 왕릉은 모두 119기에 이르는데 42기의 陵과 13기의 園, 64기의 墓가 있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고,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사친의 무덤이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묘(墓)라고 부른다.
42기의 능 가운데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남한에 남아있다.
조선 왕릉에는 각 공간적 성격에 부합하는 건축물과 조형물이 전체적인 조경과 조화를 이루고 능침 공간, 제향 공간, 진입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世宗英陵은 하나의 봉분 아래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조선 왕조 최초의 합장릉(合葬陵)으로 만들었다.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안에는 세종대왕 동상을 비롯하여 세종전, 재실, 홍살문을 거쳐 수복방, 비각, 정자각, 수라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齋室)’은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는 능침봉이 상주하였다.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이다.
‘비각(碑閣)’은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둔 곳으로 영릉신도비(英陵神道碑)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일생을 적은 비문으로 정인지가 비문을 짓고 안평대군이 썼다.
‘능침(陵寢)’은 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을 말하며 능상(陵上)이라고도 한다.
태종의 셋째아들인 세종대왕은 1418년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라 재위 32년 동안 집현전을 설치하고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6진 개척과 쓰시마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경제, 문화, 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세종대왕은 다른 왕에 비해 正妃인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8남2녀의 왕자와 공주를 두어 자손이 가장 많았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인 昭憲王后는 안주인의 소임을 다하여 후궁들의 질투가 없었다고 한다.
세종실록 26년(1444년)에 의하면 세종대왕님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제학 최만리 등 집현전의 학자들이 훈민정음의 과학성은 인정하지만 백성들의 교화에 실효성을 문제 삼자 의금부에 하옥시키고 장(丈) 백 대를 명할 정도로 한글 창제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다.
세종대왕님의 덕분에 우리 한국인은 외국인들도 배우고 있는 고유의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세종전>에서는 세종대왕의 출생과 업적과 당시의 장면을 畵工들에 의해 재현되어 전시되었지만 촬영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7월3일 경기도 이천에서 초등학교 동창생 Y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후 세종대왕 영릉을 참관하였다.
장마철에 비가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 말고도 참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英陵에 다다르니 더욱 경건하고 숙연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은 고개 숙여 세종대왕님께 묵념을 올렸다.
友瑛. 2011. Juy. 25
'레저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KBS 콘서트 7080 녹화 관람 (0) | 2011.11.28 |
---|---|
2011년 제1회 인천송도세계문화축제 에서 (0) | 2011.09.13 |
명품콘서트에 다녀와서 (0) | 2011.01.03 |
수봉공원 인공폭포 [28] (0) | 2010.08.06 |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 관람 [47] (0) | 2009.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