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相扶相助 ♥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다.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 때가 주변에 일가친척 아무도 없이 외로울 때라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집마다 자식들이 보통 4남매가 기본이었다. 그 자식들이 장성해서 결혼하면 부부를 합쳐서 8명이 되고, 자식을 둘씩만 낳아도 열 명을 훌쩍 넘어선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회갑잔치를 할 때는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하면서 축하해주어서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 정부의 가족계획정책에 따라 한 자녀만 낳은 가정들이 많았고, 많아봐야 두 명 정도였다. 그래서 당시의 아이들이 결혼 적령기가 된 요즘 시대에서는 이모나 고모, 삼촌, 외삼촌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호칭 또한 생소하게 들린다. 예전에는 八寸까지 가깝다고 했는데 요즘은 三寸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니 당연히 四寸형제들도 귀할 수밖에 없다.
남편은 3남매의 막내이고 나는 4남매의 맏딸이다.
남편의 형제도 조카가 각각 두 명씩이고, 친정 형제들도 여동생만 아들 하나이고 남동생은 조카가 두 명씩이다. 형제들마다 자식이 적다 보니 조카를 각별하게 챙기게 된다. 올해도 막내남동생의 조카가 중학교 졸업을 해서 축하금을 주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작은아들과 조카의 졸업을 앞두고 내 통장으로 500달러를 보내왔다. 환전한 금액이 563,160원인데 절반씩 나누어 작은아들과 친정조카한테 전해주었다. 예전에 친정부모님이 형편이 좋으실 때는 남편의 사업자금을 빌려주시고 손자들한테 좋은 옷과 학비도 보태주셨다.
相助는 ‘두레’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두레는 조선 후기 이앙법이 전개되면서 주로 농번기 때 일손이 부족하면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게 하기 위해서 부락이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을 말하는데 보편적인 농민들의 생활풍습으로 정착되었지만 일제강점기를 맞아 자영업자가 감소하면서 차츰 소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정마다 경조사가 생기면 축의금과 조의금 등 현물로 부조하는 풍습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에는 결혼식과 회갑연, 장례식에 가면 친척 숫자보다 직장 동료와 동창생, 친구가 더 많다. 나는 동창모임과 정기적인 친목모임을 통해서 친교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사스러운 일이나 상을 당했을 때 친목회에서는 화한을 보내고, 각자 추렴해서 扶助金을 내고 있다.
초등학교-여고-방송대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다 보니 회비 외에 부조금이 매달 한 건 이상 생겨나서 부담이 크다. 하지만 부조금은 흔히 ‘품앗이’라고 하니까 내 집에 경조사가 생겼을 때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남편도 낚시회에 가입해서 회장직을 맡았는데 회원이 많다 보니 경조사가 자주 있다.
요즘에는 개인 친목모임 외에도 상조회에 가입하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나도 한 구좌를 가입해서 붓고 있는데 내가 맏딸로서 친정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용하려고 한다.
友瑛. 2010. March..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