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記쓰기와 존재감 ♣
일기란 개인의 중요한 일이나 특히 인상 깊었던 사실을 솔직하고 자세하게 매일 기록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동물과 달라서 문자와 언어를 사용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데 가계부를 잘 관리해서 재테크에 성공하듯,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기쓰기는 인생의 설계도와 같다. 일기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또한 자신의 존재의식이며 역사이고 분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라면 쓸 필요가 없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담임선생님한테 검사받기 위한 숙제일기는 사실에서 벗어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읽기와 일기 쓰기를 무척 좋아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서 숙제를 하고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일기를 썼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당시에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가난한 이윤복군의 가정이야기로 기억된다.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가기로 했는데 어머니가 “극장 관람료 10원이면 콩나물을 사서 온 식구가 국을 끓여먹을 수 있다.”고 하시며 돈을 주지 않으셨다. 나는 서운한 감정을 일기에 토로했는데 어머니가 일기를 보시고 돈을 주셔서 극장에 다녀올 수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뇌세포가 줄어들면서 점점 기억력이 감퇴되기 때문에 문자로 기록하지 않으면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중고등학교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느끼는 갈등을 일기에 쏟아 부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나의 학창시절 일기는 늘 풍요로움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다.
요즘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모의 이혼이나 가장의 실직 등 이유로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문제아동들이 양산되고 있다.
나는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적인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기에 사춘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맏딸인 내가 여고를 졸업하고 나서 집안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결혼하면서 일기를 버리고 갔지만 결혼 후부터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육아일기를 겸한 나의 일기쓰기가 계속되었다. 남편과의 갈등, 아이들을 기르면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아이들한테 이루게 하려는 노력 등이 일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져있다.
한 사람의 일기는 ‘그 사람이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이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는 워낙 비중이 커서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원균의 모함을 받아가면서도 나라의 걱정을 하던 이순신장군의 충성과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백범 김구선생님의 <백범일지>는 두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을 띠고 있는 자서전인데 1929년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청사에서 독립운동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백범일지> 상하권 마지막에는 “나의 소원은 첫 번째도 자주독립, 두 번째도 자주독립, 세 번째도 우리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얼마 전에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지막 일기에서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라고 썼는데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고뇌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 건강상태의 기록과 배우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전한다.
나는 일기를 쓰면서 막연하게 계획 없이 생각만 하던 것이 구체화되는 것 같다.
2005년부터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일기쓰기를 중단하고, 대신에 다이어리에 메모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일기쓰기를 통해서 못다 한 학업욕구를 만족할 수 있었고, 성취감을 느꼈다.
시간이 있을 때 지난 일기장을 읽어보면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면서 반성과 용기를 갖게 하고 삶에 대한 애착을 느낀다.
나는 지금도 앞으로 해야 할 구체적인 새로운 계획들을 다이어리 속에 설계도를 만들어놓고 하나씩 실천해가고 있다.
友瑛. 2009. October.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