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rder Made와 품위 유지비 ♣
‘오더 메이드(Order Made)’란 이미 만들어놓은 기성품(旣成品) 대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과 재료 등을 직접 고르는 맞춤 상품을 말한다.
요즘에는 기성품의 품질이 고급화되어 굳이 맞출 필요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서 즉시 구입하여 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성품은 색상이나 디자인이 획일화 되어 길을 가다 보면 자신이 입은 옷이나 가방이나 신발과 똑같은 것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무척 당황스럽다. 그래서 명품시장에서도 ‘오더 메이드’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출근 길의 마을버스 안에서 내가 입은 블라우스와 똑같은 것을 입은 30대 여성과 마주쳤다. 나는 쉬폰 소재의 청색 주름스커트를 입었고 그녀는 비교적 짧은 길이의 청색 진스커트를 입었다. 나도 가끔 무릎 길이의 청색 진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코디해서 입고 다녔는데 그날 이후 그 블라우스는 다시 입고 싶지 않아서 장롱 옷걸이에 걸려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동네마다 양장점과 양복점이 있었다. 양장점에서 직접 옷감을 골라서 옷을 맞추거나 옷감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피복점에서 옷감을 사다 양장점에 공임을 주고 맞추어 입었다. 지금도 나이드신 분들은 양장점이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어 입는데 요즘에는 젊은층에서도 맞춤 양복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런 추세(趨勢)에 따라 없어졌던 양복점이 부활(復活)하고 있다고 한다.
짐승은 온몸이 털로 덮혀있어서 별도로 옷이 필요하지 않지만 사람은 사회생활을 유지하려면 學歷이나 재능 말고도 옷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고 투자를 해야 한다.
옷이나 신발, 가방 등은 한 번 구입하면 보통 3년 이상 사용하게 되는데 목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취업을 하기 위해 면접에 필요한 정장을 사고 외모를 꾸미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IMF이후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지만 외모를 가꾸는데 들어가는 성형수술 비용과 의류 및 명품가방 수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가짜인 짝퉁을 구입하기도 한다.
큰아들이 올해 전문대학 졸업반이라서 지난 여름에 졸업앨범사진을 찍었다. 나는 큰맘 먹고 백화점에 가서 거금을 들여서 요즘 젊은이의 취향에 어울리는 춘하복 정장과 반팔 와이셔츠와 색상이 다른 넥타이 두 장과 정장용 구두를 사주었고 큰아들은 그 양복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었다. 내년 2월에 졸업할 때는 추동복을 또 사주어야 한다.
옷차림은 제2의 인격이라고 말한다.
어느 식당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는 정장차림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다. 때(Time)와 장소(Place)와 목적(Object)에 따른 올바른 옷차림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에티켓(예절)로 통한다. 친구나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집에서나 입는 아무 옷이나 입고 갈 수는 없다. 또 訃告를 당한 사람한테는 액서서리를 하지 않고 무채색의 수수한 옷차림을 입어야 한다.
며칠전 큰아들이 가을에 입을만한 옷이 없는 것 같아 지하상가에 가서 긴팔 남방셔츠와 체크 무늬의 카라 달린 티셔츠를 사주었다. 아들은 지금까지 인터넷 쇼핑몰이나 보세점에서 학생들이 입는 케주얼 스타일의 옷만 사입었다. 앞으로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해야 하고 나이가 28살이니까 너무 편한 스타일만 입을 수는 없다.
내가 아들한테 거금을 들여가면서 적극적으로 옷차림에 신경을 써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나는 1973년에 여상졸업을 앞두고 이모부님의 소개로 문래동 소재의 S운수회사에 경리사원으로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와 주산급수증 사본을 가지고 찾아갔다. 나는 집안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겨우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교복을 벗으면 사복이 없어서 집에서는 어머니가 한복으로 만든 깡통치마(일명 월남치마)를 입었다. 졸업여행을 갔을 때는 혼자만 학교 체육복을 입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옷차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으셔서 재래시장에서 급히 사온 옷이 세련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S운수회사에 가서 총무과장한테 서류가 든 봉투를 내미니까 서류는 받지도 않고 노무과로 가라고 가리켰다. 노무과장한테 서류를 내미니까 꺼내어 보더니 “아가씨는 어떻게 왔어요?”하기에 이모부님 성함을 대니까 나를 데리고 총무과장한테 가서 귓속말을 한 후 그제서야 서류를 꺼내어 쳐다보았다. 총무과장은 얼굴이 상기되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총무과는 관리직 사원을 담당하는 부서이고 노무과는 운전기사와 정비사, 안내원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당시에는 내 차림새가 버스 차장(안내양)을 하려고 찾아온 것으로 착각할 만큼 행색이 촌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S회사에서는 오래 다니지 않고 주유소 경리원을 거쳐 이모부님이 경리과장으로 근무하는 운수회사로 옮겨서 4년을 근무하고 퇴직하였다.
당시 나는 19살 어린 나이였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나는 술과 담배, 군것질을 하지 않는 대신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투자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품위유지비는 친목회비, 의류비, 화장품, 방송대학교 교육비, 서적 구입비, 휴대폰 이용요금, 구두, 가방 등을 포함하여 월 평균 30만원 정도 소요된다. 내 나이가 지천명이지만 주로 30대~40대 여성들이 즐겨찾는 메이커를 사서 입는데 77사이즈(상의 Size 95)가 넉넉하게 잘 맞는다.
友瑛. 2007.September.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