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 이야기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


 예전에는 ‘뒷간과 사돈은 멀수록 좋다.’ 라고 하였고, 또 여자가 결혼을 하면 出嫁外人이라고 하여 친정에 가고 싶어도 마음 편히 갈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가사와 육아문제가 사회적 쟁점사항(Issue)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혼한 여성이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서 중도에 직장을 포기하거나 파트타임(Part time)으로 직업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혹은 직장 일에 얽매어 아예 출산을 기피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50~60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들이 세련되어 자식을 결혼시키고 나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거나, 직업을 갖고 있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두 달마다 돌아오는 반상회가 열려서 참석했다. 이 아파트는 5층짜리로 6동에는 총180세대가 살고 있다. 내가 속한 사동은 30세대인데 보통 18~20세대가 반상회에 참석한다.

  반상회가 끝나고 뒤풀이시간에 私談을 나누었는데 203호 아주머니는 출가한 딸의 외손자를 2년 동안 돌보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집으로 보냈고, 301호 아주머니는 따로 살고 있는 큰아들의 7개월 된 친손자를 돌보고 있는데 애로사항을 말씀하셔서 아들만 둘인 나는 관심을 갖고 귀담아 들었다.


 203호 아주머니는 외손자를 키우느라 외출도 자주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홀가분하다고 한다. 한번은 사돈과 만날 일이 있었는데 애지중지 기른 외손자가 외할머니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친할머니한테 달려가더라고 하면서 ‘외손자를 보느니 방앗간 고양이를 귀여워하겠다.’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고 웃는다.

301호 아주머니는 친손자를 맡으면서부터는 아예 화장을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손자를 맡았다가 토요일 오후에 아들집으로 데려가고 일요일 저녁에 아들이 다시 데려온다. 그래도 내 손자니까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보면 힘든 줄 모르고 하루가 지나간다고 했다.


 孫子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 쪽과 아버지 쪽으로 나누어 外家와 親家로 나뉘게 되는데 요즘에는 친가 보다 외가와 더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아마도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나는 3남매의 막내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했다. 맏동서가 59년생으로 나 보다 4살이나 아래이고, 시숙과는 9살이나 나이차가 나고, 시동생인 남편보다도 6살이나 아래다. 시어머님은 어린 며느리가 들어왔다고 처음부터 떠받들 듯 하셨고 시숙도  집안일을 거의 시어머니한테 맡기다시피 하였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이 조카를 키우셨는데 큰동서는 며느리답지 않게 자유롭게 마실을 다니거나 친정에 자주 드나들었다.

 

 나는 연애 중에 임신하여 결혼했는데 남편이 실직하여 사글세와 전기. 수도요금이 밀리자 집주인이 방을 비워달라고 해서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친정으로 들어갔고 5개월 만에 큰아이를 낳았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보아 주시는 대신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대식구의 빨래와 큰 집을 청소하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가버렸다.


  제사와 명절이 돌아오면 시댁에 큰아이를 업고 갔는데 큰조카와는 몇 달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큰동서는 나 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학교와 집과 회사밖에 모르던 숙맥인 나와는 달리 매사에 약삭빨랐다. 어머님이 내 아이를 봐주려는 눈치가 보이면 잘 놀고 있는 조카를 안아다 어머니한테 보시라고 안겨드렸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나한테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업은 채로 부엌일을 거들기도 했다. 친정어머니는 시댁에 갈 때 아이를 두고 가라고 하셨지만 시어머님이 아이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항상 데리고 갔다.


 1983년 남편이 배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놀고 있었는데 친정살이가 눈치가 보여서 내가 직장에 다니기 위해 시댁 근처로 사글세를 얻어서 낮 동안만 아이를 보아달라고 부탁하고 이사를 하려고 했지만 시숙이 나서서 “어머니가 우리 아이 둘을 보는데도 너무 힘든데 작은집 손자까지 보게 할 수 없어요. 절대로 안 됩니다.”  하고 마치 어머님이 자신의 소유처럼 당당하게 나오면서 극구 반대를 하는 바람에 친정에서 살면서 아이를 맡기고 초창기의 ‘에바스화장품’ 홍보사원으로 1년간 활동한 적이 있다.


 그 후 남편이 새 직장을 구해서 근무하여 친정 근처에 전셋집을 얻어 나왔는데 조카들이 다 크고 나니 어머니를 나한테 모셔가라고 해서 마찰이 생겼다. 지금은 시어머님이 4년 전에 돌아가셨고 두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지만 친정어머니가 두 아이를 돌보아 주셔서 그런지 아들은 친할머니 보다 외할머니한테 더 정을 느끼고 있고 외사촌형제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어릴 적 기억이 평생을 가는 것 같다. 지금도 친정어머니가 아프시니까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용돈을 드릴 때까지 오래 사시라고 말한다.


             友瑛. 2006. April. 3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반자  (0) 2006.05.21
논산 훈련소 입소하는 날...  (0) 2006.05.18
친정부모님  (0) 2006.01.17
부부  (0) 2006.01.17
남편의 가사노동  (0) 200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