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남지와 정림사지 답사기 ♣
도시콘텐츠 관광학과 동문회에서 재학생들과 함께 답사를 다녀왔다.
‘궁남지’는 부여 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백제시대 별궁에 딸린 연못으로 <삼국사기>에서 궁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기록이 있다.
무왕35년(634년) 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물을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본떴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궁남지는 1965년~1967년과 1941년에 복원공사를 하여 조성되었다.
‘정림사지(定林寺址)’는 부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는 동쪽으로 금성산, 북쪽으로 부소산에 둘러싸여있다.
538년 봄 백제상왕은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정림사지는 사비도읍기의 사찰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 공간 내에서도 중심지에 자리 잡았다.
왕궁에 버금가는 높이 11미터에 위치하여 백성들은 어디서나 정림사를 볼 수 있었다.
정림사지에 우뚝 서 있는 석탑 표면에는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전승기념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1층 탑신부는 탑의 몸체로 사리를 봉안하여 예배의 중심이 된다.
여러장의 돌을 사용하여 단층올 된 낮은 기단을 만들도 연석의 각 면에는 우주(귀퉁이 돌)와 탱주(지탱하는 돌)을 하나씩 세웠다.
1층 탑신의 네 모퉁이에 별도의 돌로 우주를 만들고 그 사이에 두 장씩 판석을 끼웠다.
(2) 탑신 2층부터 몸돌은 윗면으로 갈수록 부재가 줄어들어 차례로 4개, 2개, 한 개의 돌로 만들어졌다.
(3) 지붕돌 아래면에는 여러장의 석재로 구성된 2단의 지붕받침을 두었고 위층으로 갈수록 석재의 수가 줄어든다.
지붕돌의 윗면에는 한 단의 탑신받침을 놓고 상륜부에는 노반석을 두었다.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의 폭이 넓고 작은 석재를 많이 사용하여 축조하였기 때문에 외견상 목탑과 유사하여 “목탑같은 석탑”이라고 불린다.
(4) 상층부는 탑의 가장 위에 놓이는 부분이며 여러개의 구성요소로 가장 장식적이다.
탑과 탑을 둘러싼 배치와 구성은 정교한 수치에 의하여 구성되었다.
탑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수직적 원리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지대석 넓이가 14척이며 그 절반인 7척이 이 탑의 건립기본 단위가 된다.
백제의 문화유적을 답사하면서 조상님의 안목과 지혜를 느끼게 하였다.
友瑛. 2025.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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