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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관광지 탐방

개항박물관을 답사하다

관광학과 답사보고서를 쓰기 위해 개항박물관을 다녀왔다.

1. 개항과 일제강점기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대원군이 정치적 실권을 잡고 내정 개혁을 실시하고 통치체제를 재정비하였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으로 대원군에[ 대한 농민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집권 10년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조선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두 체례의 양요를 막아냈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통상수교 거부는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조선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하였다.

강화도조약은 형식적으로는 근대적 조약이었지만, 일본의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을 인정한 불평등조약이었다.

조선은 개항 이후 적극적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이에 반발한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개화정책이 후퇴하였다.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과 농민봉기를 일으켰지만 둘 다 실패하였다.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의 내정간섭을 강화하여 갑오개혁이 외세의 침략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개항기 인천은 제물포로 불리면서 한적한 포구에 불과했지만, 구한말 외세에 의해 강제로 개항하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고 문호를 개방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인천은 일본과 청나라의 조계지(租界地)가 조성되면서 서구 문물이 유입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영화학당, 내리교회, 대불호텔 등 다양한 건축물이 설립되면서 근대문화유산이 조성되었다.

 

2. 인천개항박물관의 탄생

구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인천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있는데,1897년 석조로 개축된 건물 외부는 1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견고하다.

1883년 인천 개항 후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되었고,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하였다.

초기에는 해관통관세와 조선에서 생산되는 금괴와 사금의 매입업무를 취급하였다.

한일병합 이후 1911년에는 한국은행 인천지점에서 조선은행 인천지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광복 후 1950년부터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바뀌었다.

1980년에는 조달청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고, 1996년에sms 인천지방법원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97년 폐쇄되었다.

2000년 인천광역시 중구청에서 보수를 하고 관광개발과 사무소로 사용되다가, 2006년 중구청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수리를 하고 근대건축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0102일 인천개항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3. 개항박물관의 테마별 유물전시실

개항박물관은 개항 이후 인천에 도입된 다양한 근대문화와 관련된 321669점의 유물과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 연구하여 4개의 전시실에 테마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1) 1전시실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하여 유입된 근대문물을 전시하고 있다. 인천의 개항과 근대문물 및 최초의 갑문식 도크에 대한 영상자료와 해관에 대한 기록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양무호’. ‘광제호

양무호1888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해군 양성을 목표로 최초로 해군사관학교인 조선수사해방학당이 강화도에 설립되었다.

청일전쟁 후 운영난으로 1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신식전함을 가지려는 노력으로 1903년 일본으로부터 3,424톤의 군함을 인천항에서 납품받고 나라의 힘을 키운다는 뜻의 양무호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화물선을 개조한 군함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고, 운항비용이 많이 들었다. 정부는 일본에 새로운 1,066톤의 광무호를 주문하고 1904년 인천항에서 인도받았다. 광제호는 무선전선시설이 설치되었고, 해안 경비함, 등대 순시선, 세관감시선 등으로 이용되었다.

내리교회

1886년 선교 임무를 띠고 인천에 도착한 아펜젤러 일행이 부활절예배에서 인연을 맺고 1891년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 예배당인 내리교회를 설립하였다.

영화학당

1892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립초등학교인 영화학당은 아펜젤러의 뒤를 이은 내리교회를 맡은 존스목사가 교회 안에서 어린이들에게 신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남학생을 가르친 학교는 후에 영화학교가 되었고, 존스목사 부인 마가렛 벤젤이 여학생을 맡아 가르친 학교는 현재 영화초등학교가 되었다.

팔미도 등대

1903년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항의 원활한 이용을 위해 세워진 등대이다.

(2) 2전시실

1899년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경인선 철도의 도입과정과 기공식 순간까지 관련된 내용을 사진과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

(3) 3전시실

개항기 인천 개항장 일대 각국의 조계지 거리풍경과 관련된 자료와 입체적으로 만든 거리모형을 전시하고 있는데, ‘포토존으로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한테 인기가 있다.

(4) 4전시실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과 관련된 자료와 제1은행에서 사용했던 창문과 금고가 그대로 남아있다.

 

4. 근대문화유산의 역사적 의의

 

개항기에 도입되거나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은 우리나라가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식민사회에서 일본의 식민정치를 합리화시켜주는 빌미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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