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人生의 黃金期 ♥
사람마다 타고난 運命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흔히 ‘팔자도망은 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운명도 팔자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바꿀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부모 아래서 태어나 평생 동안 고생만 하거나 병마(病魔)와 싸우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귀한 집에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살다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부유하게 잘 살다가 老年에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고, 初年에는 고생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면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현재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예전에 잘 나가던 얘기를 하면 “누구는 젊어서 금송아지를 매지 않고 살았나?”하고 비아냥한다.
요즘에는 평생학습의 기회를 받을 수 있고 다양한 직업군이 생겨나서 자신의 열정과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우리가 늘 관심을 가지고 부러워하고 있는 연예인 중에는 자기관리에 철저해서 부와 명성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관리를 하지 못해서 그동안 쌓아놓은 人氣와 富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王道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척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산중턱 아스팔트루핑을 지붕위에 덮은 집에 살았는데 수도가 없어서 아랫동네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사용했고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겨우 수도가 놓여졌다. 비평준화시절 당시 치열한 입시경쟁을 통해 명문 [인천여자중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12살 터울의 막내 남동생이 태어나 소아마비로 판명되자 집안 분위기가 늘 침울하였고, 경제적으로 기울어지자 부득이 [인일여고]가 아닌 실업계여고로 진학하였다. 그래서 여고3년 동안 중학교 동창생을 만나게 될까봐 동인천에 가지 못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학교 친구들이 서로 어울려 한창 발랄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을 때 나는 학교에서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을 돌보고 집안 걱정을 하면서 일찌감치 애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시내버스 운전기사여서 격일제로 근무하셨는데 비번 날이면 늘 술에 취해 돌아오셨고, 어머니는 남동생을 고쳐보겠다고 용하다는 곳을 찾아 사방팔방 찾아다니셨다. 나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母性愛가 父性愛 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남편을 만나서 2년간의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하여 올해로 29년을 맞게 된다.
나 역시 아버지처럼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 때문에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숱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 교육만큼은 신경을 썼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벌여놓은 사업이 1998년 IMF를 맞아 큰 위기를 맞이하면서 나는 다른 것 보다 아이들이 가정형편 때문에 충격을 받아 공부에 소홀할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스피커를 조립하는 전자회사에 생산직으로 들어갔는데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생산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여자들이 단합하여 거칠게 텃세를 하였지만 그들과 맞서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나갔다.
남편도 2년 동안 쉬다가 생각을 바꾸어 생산현장에 취직을 하면서 가정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방송대학교] 공부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국문학사’와 ‘법학사’ 등 두 번의 학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큰 아들은 실용음악을 전공하였다.
작은아들은 명문대학교 공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올 3월에 4학년에 복학 예정인데 지금은 고등학생들한테 영어와 수학 과외지도를 하고 있다.
나는 2007년 1월부터 지금의 직장으로 옮겨와서 사장님의 신임을 받아 근무를 잘 하고 있는데 올 1월부터는 급여도 10%나 올랐다.
내가 1955년 1월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55살이 된다.
내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포기하지 않고 내 자신을 담금질한 결과 다른 사람의 눈에도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비춰진 것이다. 만일 내가 비관적으로 살아왔다면 나는 최종학력이 실업계 졸업자로서 평생 동안 학력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살아갔을 것이고, 컴퓨터를 다룰 줄 몰랐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다루면서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D동력벨트' 매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대부분의 고객이 구매부직원이나 대표 등 남자들이다. 나는 평소에 잘 웃지 않아서 사진을 찍을 때도 무척 어색했는데 고객을 상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표정이 밝아졌다.
며칠 전에는 설날을 맞아 주 거래처인 구매부 차장님이 유사장님을 통해서 자사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내 몫까지 보내왔고, 다른 거래처 대표는 벨트매장에서 사과박스를 드리려고 “시간이 되시면 잠시 다녀가세요.”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오면서 생활용품셋트를 두 개 가지고 왔다.
요즘 내가 즐겨 보고 있는 모 방송사의 주말드라마 제목이 <내 인생의 황금기>이다.
나는 지금 이시간이 가장 행복한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아직 두 아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자 육아문제에서 자유롭고, 시부모님은 안 계시고, 친정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우리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또 [영화여고] 동창모임과 [방송대 중문학과]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서림초등학교] 인터넷카페를 드나들면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도 내가 공부와 직장 일을 병행하느라 고생한다고 많이 챙겨주고, 두 아들도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직장에서 번 돈으로 가정에 보탬이 되고 친정 부모님과 조카들한테 도움이 되어 보람을 느낀다.
友瑛. 2009. January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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