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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Report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   목  차   ★


1. 對象 選定의 動機...............................................................2



2. 事前 準備와 進行過程..........................................................2



3. 現場에서 새롭게 느끼거나 알게 된 生活文化...........................3



4. 傳統 生活文化와 現代文化의 比較, 問題意識...........................4



5. 월미공원 傳統庭園地區 踏査 資料 寫眞 첨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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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對象 選定의 動機

우리나라는 오천년의 歷史와 傳統을 가진 민족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기름진 옥토에다 광물이 풍부하고, 금수강산으로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어서 중국 및 일본 등과 서구 열강들의 침입을 받았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에 의하여 귀중한 문화재가 반출되었고 유적지가 훼손되었지만 우리 민족은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전통과 유적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역사와 전통은 곧 조상의 뿌리와 같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통을 가진 유적지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실정이다. 현재 북한에 소재한 고구려의 광개토왕릉 등 여러 유적지가 잘 보존 되어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광역시는 예로부터 항구도시로서 기능을 다하였다. 인천의 관문인 월미도는 백제시대부터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지키는 군사요지였고, 개항기에는 외국선박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머무르는 첫 기착지였다.

월미도는 우리 민족이 거쳐온 것처럼 역사적으로 기구한 살아왔다.

1883년 1월에 인천항이 개항되었는데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병참기지화 되었다. 1906년에 일본은 자재운반을 하기 위해 월미도에 교량을 준공하였고 1918년에는 시민의 환심을 사고자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풍치지구로 조성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군의 해양경비대의 주둔지가 되면서 월미도가 폐쇄되었고,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으로 연합군사령부의 주둔지가 되면서 군사요새화로 바뀌었다.

2001년 10월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월미공원으로 귀환하여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역사.문화.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2004년부터 공원1단계 사업을 시작하여 2007년 9월19일에 ‘한국전통정원지구’가 개방되었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시점으로 하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양식을 재현하였다. 

나는 평소에도 우리나라 민속과 전통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한국전통정원지구’가 개방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이곳을 답사하기로 결정했다.


2. 事前 準備와 進行過程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평일에는 가 볼 수가 없다. 마침 추석 연휴가 길어서 추석 전 9월23일에 동인천에서 월미도행 버스를 타고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월미공원 현장답사를 나섰다.

연휴기간이라 그런지 가족이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초가을 햇살에 눈부시고 바람이 적당하게 불어서 답사하는 동안 무척 편안했다. 안내소에 관리하는 직원이 보이지 않았지만 재현된 건물 마다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어서 노트에 옮겨적었다.

월미공원 ‘한국전통정원지구’는 문화재청 전문위원과 사학자들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사실성에 근거하여 재현된 것인데 개방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인터넷에서는 아직까지 자료를 구할 수가 없다.


3. 現場에서 새롭게 느끼거나 알게된 生活文化


월미공원 ‘한국전통정원지구’에서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傳統庭園을 ‘庭’과 ‘園’으로 구분하여 개념을 해석하였다.

‘庭’‘은 담에 둘러싸인 곳에 植物과 경물(景物)을 통해 조형된 공간을 의미한다. 이곳에서는 궁궐정원, 별서정원, 민가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園’은 園林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자연 속에서 인간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서 園의 형태화를 자연 속에 경물(景物)로 나타나는 구곡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궁궐정원으로 부용지(芙蓉池)와 애련지(愛蓮池)를 재현했고, 조경(造景) 요소로는 괴석과 석지, 풍기대, 굴뚝을 도입했다. 또한 조선시대 궁궐정원과 전통조경 요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벽과 조형열주를 도입하여 전통궁궐정원에 대한 이해를 높게 하였다.

또한 별서정원으로 소쇄원. 국담원. 서석지를 재현했고, 민가정원으로 양진당과 전통 민가를 재현했다. 더불어 농경문화 체험공간으로 농업체험장과 채원(菜園)을 만들었다.

‘한국전통정원지구’에 재현되어 있는 정원양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미산

조선 태종 때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고 경회루를 세우고 교태전 뒤뜰에 세운 인공동산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등의 무늬를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굴뚝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 형태로 모형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는데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서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2]부용지(芙蓉池)

서울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연못으로 정조 원년(1777)에 열무지를 부용지로 개칭하고 정조 16년(1792)에 택수재를 재건하여 부용장이라고 하였다.

장방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방지로서 못 속에는 원형의 섬이 배치되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천원지방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3]애련지(愛蓮池)

창덕궁 후원에 위치하며 숙종18년(1692)에 조성된 연못이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宋代

의 주렴계가 연꽃을 사랑하여 쓴 ‘애련설’에서 따온 말이다.

애련지는 방형의 연못으로 못의 북쪽가에는 방형의 정자인 애련정이 놓여져 있고 정자의 서쪽으로 입수구가 위치하고 있다.


[4]국담원

18세기초 관군이 주재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경남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만들어진 별서정원으로 주씨 古家의 동남쪽에 있으며 풍욕루, 하환정, 충효사, 영정각, 국담, 영귀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방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중앙에 담주라고 불리는 방도가 있으며 물에 근접할 수 있는 계단과 좁은 단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국담과 하환정, 중도를 재현하였다.


[5]소쇄원

양산보가 1520~1557년 사이에 전남 담양군 지곡리에 조성한 별서정원이며 담장으로 둘러쳐진 內園과 마을 쪽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 뒷산인 옹정봉에 이르는 外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원은 대나무숲이 있는 진입공간, 대봉단과 애양단이 있는 공간, 계류와 광풍각이 있는 공간, 제월당과 화계가 있는 공간 등 네 개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이곳에서는 소쇄원도를 기초로 하여 소쇄원의 담장, 화계, 초정, 연못 등을 재현하였다.

[6]양진당

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으로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류운룡이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동에 지은 17세기초 건축물이다.

ㅁ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앞면 동쪽에는 문간채, 뒷면에는 사랑채가 연결되어 3개의 건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보이며, 후원의 동북쪽에는 두 채의 사당이 있다.

나는 월미공원내 한국전통정원을 두루 돌아보면서 옛 선조들의 건축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연환경을 가꾸고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4. 傳統 生活文化와 現代文化의 比較, 問題意識


현대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과 의학의 수혜자로서 편리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파헤쳐지는 산림 때문에 녹지공간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고, 환경파괴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앞으로 1세기도 지나기 전에 우리 주위에서 녹지공간은 사라져버리고 황량한 인공 구조물만 남게 될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대통령이 집권하여 가장 먼저 행한 일이 조국 근대화사업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도시와 농촌에서는 초가집이 깔끔한 기와집으로 대체되었으며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전통가옥 보다 유지관리가 편리하고 안락함을 주는 아파트라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전통가옥에서는 주로 앞마당에 수도나 우물을 파서 사용하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오는 분뇨를 이용하여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채소를 가꾸고 배설물을 처리하고, 양잿물을 이용하여 세탁을 했을 때는 환경오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집안으로 들어가서부터 욕실에서 샴푸를 사용하고, 정화조 안에 분뇨가 그대로 버려지고, 주방에서는 화학세제를 이용하여 그릇을 닦고 싱크대 안으로 버려진다. 세탁기를 사용하면서 비누 대신 화학세제를 사용하여 거품이 그대로 바다로 흡수된다.


  현대인들은 전보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초등학생부터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또한 컴퓨터와 TV의 보급으로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비민과 성인병 환자가 늘었다.

요즘은 주5일제를 실시하는 기업체가 증가하면서 주말과 휴일에 등산이나 낚시 등 자연을 찾아다니면서 건강관리에 힘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각 도시에서도 환경을 살리는 동시에 ‘도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근린공원 등 자연과 벗할 수 있는 녹지공간을 조성하고,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차장은 지하로 보내고 지상에는 시골처럼 원두막이나 물레방아와 인공폭포를 설치하여 친환경적인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동안 무엇이든 빨리 해치우는 것을 좋아해서 늘 바쁜 일상을 살아왔다. 여기서 파생된 ‘빨리빨리병’은 세계에서 가장 급한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슬로우 푸드(Slow Food)'운동이 일고 있다.

선조들은 사방이 자연으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세상을 관조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느끼면서 살았다.

현대는 전통을 지키면서 편리함을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5. 월미공원 韓國傳統庭園地區 踏査 資料 寫眞 첨부

 국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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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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