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ina Town ♣
차이나 타운은 華僑들이 집단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화교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중국이나 타이완(臺灣) 국적을 가진 1世代를 말하고, 현지 거주하는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2世代는 화인(華人)이라고 부른다.
화교가 해외로 이주하게 된 것은 9세기말 당나라때 북방민족들의 친략을 받아온 중국인들이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하였고, 몽골족과 만주족이 침입했을 때도 대거 이주하였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전쟁과 기근 때문에 세계 각지로 이주를 하여 자리잡고 살게 되었는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화교의 숫자가 오천 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중에서 85%가 동남아에 이주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는 차이나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중국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높다란 패루(牌樓)가 설치되어 있는데 중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산동성의 威海(웨이하이)市가 무상으로 기증했다고 한다. 이곳은 중국 특유의 붉은색 간판을 단 건물들이 늘어서있어서 이국적인 정취를 풍겨준다.
지금은 차이나 타운만 있지만 인천시에서는 북성동에 구한말 청관거리와 왜관거리도 재현할 예정이다. 차이나 타운에는 1884년 청국의 치외법권지역으로 체결되고 나서 화교들이 대거 이주하여 현재 화교2세와 3세가 살고 있는데 초기에는 부두 노동자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근면한데다 사업수완이 좋아서 주로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다.
화교 상인들은 화상(華商)이라고 부른다. 화상들은 어디를 가나 차이나 타운을 형성하여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언제나 중국 본토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에 충실하고 경제적 활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거뜬히 극복한다.
화교기업들은 매출 규모에 비하여 협소한 사무실을 사용하고 최소의 인원으로 꾸며나간다. 심지어는 자택의 응접실을 사무실로 사용하여 가족 중심으로 이끌어나가는 곳이 대부분이다.
회교들은 애국심이 강해서 1989년 천안문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 중국정부에 경제적인 제재를 가했을 때 각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의 자본이 중국으로 들어가서 위기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중국이 경제성장의 발판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였다.
나는 지난 연휴기간에 월미공원에 다녀오는 길에 차이나 타운을 걸으면서 천 원짜리 물건을 쌓아놓고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는 상인정신을 느꼈다.
차이나 타운 인근에는 중구청과 근대 건축 박물관과 자유공원, 한중문화원이 자리잡고 있고, 1905년에 개업하여 지금까지 자장면을 만들어 만들어 팔고 있는 ‘공화춘’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주위에는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旗袍)’를 팔고 있는 상가들이 즐비하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어 열풍에 힘입어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있다.
‘차이나 타운’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友瑛. 2007. October. 6
차이나 타운 입구에 있는 패루
중구 북성동 관내 안내도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도
중국 전통 소품을 파는 상점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
공화춘과 청관
한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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