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吉童傳』의 作家와 作品에 대한 硏究 -
국어국문학과 최 정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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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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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序論 1. 硏究 目的 2. 硏究 方法 Ⅱ.『洪吉童傳』의 創作動機와 背景 1. 創作動機 2. 創作背景 Ⅲ. 許筠의 作家硏究 1. 政治思想 2. 人物論 3. 作家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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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洪吉童傳』의 作品硏究 1.『洪吉童傳』에서의 洪吉童과 실존인물 洪吉同과의 상관관계 2. 作中인물 洪吉童에 대한 硏究 3.『洪吉童傳』의 作家에 대한 論議 1) 許筠 創作論 2) 許筠 創作 否定論 3) 許筠 創作 再肯定論 4.『洪吉童傳』의 小說史的 位置와 國文學的 價値 1) 小說史的 位置 2) 國文學的 價値 Ⅴ. 結論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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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序論
조선후기 (16세기~19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우리나라 소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해당된다. 그것은 우리의 고전소설 대부분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말미암아 조선조의 사회와 경제기반이 일시에 무너지고 사상적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중인이하의 계층에서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하게 되었고 漢文小說 중심에서 國文小說 중심으로 옮아감으로써 본격적인 대중소설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최초의 國文小說로 일컬어지는 許筠의 『洪吉童傳』이 출현하였다.
1. 硏究目的
조선후기 小說史의 첫머리에 실려있는 작품이 許筠의 『洪吉童傳』이다. 許筠과 『洪吉童傳』은 따로 떼어놓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작품 속에는 작가의 사상과 정서가 용해되어 있다. 그러므로 작가연구 에서는 작품에 투영되어 있는 사상이나 정서를 검출함으로써 그 작가가 어떠한 사상적 바탕과 정서적 경향을 가졌던가를 확증하려는 작업도 이루어진다.1)
『洪吉童傳』은 사회의 모순과 비리, 봉건왕조의 부패상을 직시하고 염증을 느낀 작가가 모순된 사회상을 드러내기 위해 도술을 사용하는 내용을 그린 사회소설로 허균의 정치사상과 관련된 당시대의 사회현실이 지닌 불합리한 비판 정신을 수용하고 있다.
본 論文에서는 당대의 지식인 계층이었던 許筠이 어떠한 이유에서 서얼들과 어울렸으며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작품을 창작했는지 고찰해 보겠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洪吉童傳』의 작가에 대한 논의와 『洪吉童傳』에서의 洪吉童과 실존인물 洪吉同과의 상관 관계도 밝혀 볼 것을 目的으로 한다.
2. 硏究方法
許筠은 『洪吉童傳』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워낙 글재주가 뛰어나서 문인이기 이전에 관료로서 여러 방면에 걸쳐서 새로운 사상과 정책을 제시하였다.
본론에서는 『洪吉童傳』의 창작 배경과 창작동기, 許筠의 作家論과 作品論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1) 『고전소설 연구의 방향』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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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나누고 許筠의 정치 사상과 人物論, 作家論, 『洪吉童傳』의 作中人物 硏究와 小說史的 위치, 國文學的 가치로 세분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洪吉童傳』의 創作動機와 背景
1. 創作動機
『洪吉童傳』의 작가를 許筠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澤當 李植이다. 그는 『澤當先生別集 권15』에서 『水滸傳』의 작가가 3代에 걸쳐 벙어리가 된 것은 도
적을 의적으로 높여서 지었기 때문이며, 許筠 또한 『洪吉童傳』을 지어 『水滸傳』에 비겼다고 한다. 허균과 박엽 등이 그 책을 좋아하여 책속에 나오는 패장의 별명을 자기들의 호로 삼아 서로 희롱하였고 서양갑과 심우영 등은 그 행동을 실천에 옮기려다 한 마을이 가루가 되었고 허균도 모반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洪吉童傳』을 『水滸傳』에 비겼고 서얼의 등용을 연명으로 주장 했으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스스로를 竹林七賢이라 지칭하면서 신분제도 타파를 위하여 모반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했던 점이다.
이때 이경준이 격문 眞龍未起 假虎先鳴 (진짜 용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가짜 호랑이가 먼저 운다는 뜻으로 참용은 영창대군을 거짓 호랑이는 광해군을 지칭함)2)을 뿌렸는데 사실은 許筠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許筠은 당시 현실에 불만을 가진 인물을 규합하거나 지원하는 과정에서『洪吉童傳』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2. 創作背景
홍길동 집단과 같은 대규모의 도둑집단이 발생하게 된 데에는 당대의 사회모순에 원인이 있다. 그 사회모순은 다름아닌 연산군대의 정치문란과 기강의 해이, 적서의 차별과 같은 신분제도의 모순 등이며 홍길동 집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이와 같은 모순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것이다.3)
『洪吉童傳』은 許筠 문학의 白眉라 할 수 있는데 적서차별 사회통치의 모순 등을 문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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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전소설론』 P177
3)『고전소설론』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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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許筠의 作家硏究
1. 政治思想
許筠의 사상에서 두드러진 것이 정치사상이다. 그의 문집 『惺所瓿覆藁』에 論의 형식으로 쓴 글속에는 이념개혁, 내정개혁, 국방정책의 강화, 신분계급의 타파 등의 내용에 개진되어 있다.4) 그는 백성을 지배층과 대립적인 관계
에서 파악하면서 객관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행동 정도에 따라 恒民, 怨民,
豪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중에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豪民이 가장 두려운 존재다. 豪民이 중심이 되어 怨民을 모으고 지배체제에 반기를 들면
그것이 농민저항으로 나타난다’5)는 豪民論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국가와
사회의 모순된 제도에 의한 인간차별 문제로서 ‘재주있는 사람을 버리지 말라’는 遺才論을 내세웠다.
정주동은 『洪吉童傳 硏究』에서 許筠의 정치적인 생애를 5기로 나누었다. 제1기는 (선조2년~30년) 修學登龍 時代이고, 제2기는 (선조30년~41년) 宦海波爛 時代이고, 제3기는 (선조41년~광해군5년) 下野失意 時代이고, 제4기는 (광해군5년~9년) 保命得意 時代, 제5기는 (광해군10년) 叛逆被誅6) 時代라 하였다. 이 중에서 창작시기는 제3기로 추정했다.
2. 許筠의 人物論
蛟山 許筠(1569~1618)은 조선후기 소설사의 한 획을 그은 작가라 할 수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조선전기소설을 대표 했다면 조선후기는 당연히 許筠이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최초로 국문소설인 『洪吉童傳』을 지었기 때문이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동인의 領首였으며 許筠의 兄과 누이동생(허난설헌) 역시 뛰어난 문인 이었다. 이러한 가문의 배경이나 자신의 능력을 보아서는 순탄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는 당 시대에 통용되던 가치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고 서얼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천지간의 괴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許筠은 역적으로 死刑을 당했기 때문에 行狀이 없다. 하지만『李朝實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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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미화,『허균의 생각』 p25
5)『고전소설론』 P103
6)『국문학개론』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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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許筠에 대한 기록을 찾아 열거해 보면 선조27년에 登科하여 광해군 10년에 死刑 당하기 직전까지는 官運이 좋아서인지 파면도 잘되고 붙기도 잘하여 재간이 좋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7)고 되어있다
許筠 은 광해군 시대에 갖은 벼슬을 다하다가 드디어 형조판서와 정이품 우참찬까지 이르게 되었다.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폐위에 주동자로 가담하였지만 오히려 이들을 옹립하여 광해군을 없애려 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능우는 『許筠論』에서 “許筠은 영창대군 생전에는 그를 옹립하고 공을 세우겠다고 마음먹고 반대자 이이첨을 미워했지만 나중에는 이이첨에게 붙어 버렸고 스스로 才操를 이기지 못하고 나중에는 스스로 말려든 제 꾀에 광해군을
버리려다가 쓰러진 者였다”8)고 하였다
『李朝實錄』사관들의 기록에 의하면 許筠은 대단히 똑똑하고 재빠르며, 고전에 밝고 글을 잘 쓰지만 허황하고 자제력이 없고, 비정하고, 요사하고, 붙기 잘하고, 흉서를 조작하고 모략문을 지어서 써먹는 협잡 사기꾼으로 묘사되고 있다.9)
3. 作家論
許筠은 당시 지배질서에 반발하면서 자기 작품의 주인공들을 선택하여 설정했다. 스승 이달을 주인공으로 한 <손곡산인전>을 비롯하여 <엄처사전>, <장산인전>, <남궁선생전>, <장생전>등 다섯 편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뛰어나지만 불우한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어서 逸士小說로 불리어진다.
그는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실천적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뛰어난 문인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정치인이기도 했다.
조윤제는 『한국문학통사』에서 “一代의 혁명가 蛟山은 갔으나 그의 정신만은 영원히 『洪吉童傳』에 살아있다.”고 하였고, 이병기는 『國文學全史』에서 “그는 수호전을 애독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蹈襲하지 않고 우리 전래의 비슷한 설화로 창작한 것이 곧 洪吉童傳이었다.”고 하였다. 또한 천태산인은 『증보 조선 소설사』에서 “許筠은 洪吉童傳 한 책으로써 조선 고대의 문단에 가장 위인이었다는 찬사를 받음이 마땅하겠다.”고 하였으며, 박성의는 『한국고대소설사』에서 “귀족, 부호, 양반들은 모두 許筠의 적이었고 筠의 목표는 민중의 옹호, 사회의 혁명 이었다. 그는 불의를 보면 피가 끓어오르는 지사였고 감상시인이었다.‥‥ 모순된 현실사회 혁명을 기도하였던 것이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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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고소설연구』 P144
8) 이능우『고소설연구』 P163
9)『고소설연구』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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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李朝實錄』에 나타난 기록과는 관계없이 국문학 연구자들은 그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Ⅳ.『洪吉童傳』의 作品硏究
1.『洪吉童傳』에서의 洪吉童과 실재인물 洪吉同과의
상관관계
『洪吉童傳』은 영웅 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전기적 유형 내지 영웅의 일생으로 기본 구조가 이루어져 있고 그 소재를 당시 실재했던 의적 洪吉同에서 취하고 있다.
洪吉同은 연산군 6년(1500)에 붙잡힌 강도로 기록되어 있다. 강도 洪吉同은
玉貫子를 붙이고 밝은 띠를 매고 堂上儀章 차림의 귀하신 몸이 되어 첨지 행세를 하면서 버젓이 관가를 출입하고 대낮에 떼를 지어다니며 무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堂上儀章을 하였기 때문에 고을 수령들조차 존대를 했고 그 일당들의 세력은 무섭게 컸다는 것이다.10)
<中宗實錄>에 의하면 중종18년(1513)에 洪吉同은 옥중에서도 모종의 연락을 하였으며 놀라운 일을 감행하여 체포된 도적을 한군데에 가두면 놀랄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그들을 分囚(분산시켜 가두자)하자‘11)는 것이다. 이렇듯 洪吉同 사건은 형조에서도 다루지 못하고 의금부에서 다룰 만큼 중대한 사건 이었던 것이었다. 이능우는 『洪吉童傳과 許筠과의 관계』에서 국문학사에서『洪吉童』은 許筠이 만든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許筠이 死刑당한 해가 1618년이고 강도 洪吉同의 이름이 거론된 조헌의 상소는 1588년의 일이기 때문에 許筠의 『洪吉童傳』이 설령 있었다해도 연산군대 실재인물인 洪吉同을 모델로 한 『傳』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12)
2. 作中인물 洪吉童에 대한 硏究
『洪吉童傳』은 神話로부터 형성된 전기적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洪吉童傳을 이루고 있는 話素들은 신화로부터 형성된 전기적 유형에 연원을 두고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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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홍길동전과 허균의 관계』 P175
11)『고소설연구』 P177
12)『홍길동전과 허균과의 관계』 P179
13)『한국고소설의 재조명』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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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洪吉童傳』을 이루고 있는 화소들이 『洪吉童傳』만의 특수한 화소가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화소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동일은 고전소설의 인물의 영웅상을 자아와 세계의 상호우위의 관계를 이루는 가운데 자아가 세계의 도전을 물리치는 인물로 파악했다.14)
김열규는 고전소설에 있어서 악인형의 문제를 고찰했는데 악한이 선인을 부각시키는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 인간존재의 ‘심연의 계시자’로서 다루어진 예로서 洪吉童을 들었다.15)
개성화된 신화가 꿈이며 신화는 곧 비개성화된 꿈이라는 융(C.G Jung)의 말을 빌리면 태몽이야말로 주인공의 신화적 내력을 지시하는 정보기능과 함께 서사적 주체의 행동화에 대해 유추적 관계를 갖는다고 한다.16) 태몽에는 주인공의 과거, 현재, 미래의 순환론적 세계가 응축된 정보로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洪吉童傳』의 태몽모티프를 살펴보면 洪吉童의 탄생담에는 용신숭배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吉童의 탄생을 점지하는 신비체험(꿈)에서 그 신비체로 청룡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의 영웅적 재질과 능력을 환기한다는 것이다.
정실부인과 함께 태몽을 꾸지 않은 홍판서의 단독체험은 吉童의 운명을 암시하게 되고 시비 춘섬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그 사이에서 태어난 吉童의 고난의 운명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3.『洪吉童傳』의 作家에 대한 論議
『洪吉童傳』의 작가가 許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여러 연구자들은 계속적으로 논란을 벌여왔다.
기존의 연구에서 제기된 견해들을 종합하면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1) 許筠 創作說
기태준은 『朝鮮小說史』에서 이식이 『擇堂集』에서 언급한 ‘許鈞作 洪吉童傳, 以擬水滸’라는 기록을 근거로 삼아 “전하는 말에 許筠이가 水滸傳을 百讀하고서 洪吉童傳을 지었다고 한다.”17)라고 말하여 洪吉童傳의 작가에 대해 최초로 언급하고 있다.
이후 이같은 견해는 주왕산, 박성의, 김기동, 정주동의 저서에서도『洪吉童傳』의 작가를 許筠으로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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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고전소설 연구의 방향』 P30
15)『고전소설 연구의 방향』 P31
16)『한국고소설의 재조명』 P16
17)『한국고소설의 재조명』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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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許筠 創作 否定說
許筠창작 부정설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이능우이다.
그는 『성소부부고』, 『조선왕조실록』, 『대동야승』, 『조야집조』, 『어우야담』, 『연려실기술』, 『규사』등 광범위한 문헌기록을 토대로 許筠의
행적을 추적하여 ‘위대한 인간’이나 ‘혁명가’, ‘지사’가 아니라 ‘파면도 잘하고 붙기도 잘하는 엄청난 小人’18)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진세는 이식이 『광해군 일기』나 『선조수정실록』등의 편찬 사업에 종사 했으면서도 『洪吉童傳』과 관계되는 발언은 한적이 없으며 이식이 죽은 뒤 27년이 지난 후에야 『擇堂集』에 나온다는 사실이 의심스럽고, 許筠의 제자
인 기준격이 許筠을 궁지로 몰기 위해 올린 비밀 상소문 속에서도 『洪吉童傳』을 지었다는 말이 없으며 적서차별 폐지를 주장한 『洪吉童傳』의 내용과는 달리 許筠은 문란한 처첩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許筠 창작설을 부정하였다.19)
3) 許筠 創作 再肯定 說
허균창작설이 공격을 받자 1970년초부터 허균창작설을 옹호하는 견해가 활발해졌다.
차용주는 『허균론 재고』에서 이능우의 허균에 대한 인물평가를 반박하고 김진세가 주장한 『擇堂集』의 기록에 대해서도 “택당과 같은 대가의 유고는 字句의 수정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첨입은 더구나 있을 수 없기에 수록된 내용은 택당의 것으로 믿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20) 조동일은 “『洪吉童傳』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은 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의한 평가”이므로 작가와 작품을 별개로 생각했다. 이는 이능우가 인물을 중세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작품은 근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함으로써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이문규는 許筠이 지은 5편의 傳과 『洪吉童傳』의 등장인물의 특성과 작가의식이 서로 상통하므로 동일작가의 소산이라고 하였다.
정주동은 『洪吉童傳』을 최초의 국문소설로 보는 학계의 통념에 처음 의문을 제기하고 漢文原作說을 내세웠다. 그 근거로 한문 사대가인 이식이 체면상 국문소설을 읽었을지가 의문이고 이조시대 소설에는 俗諺小說이라 하여 한문소설과 구별하였는데 『洪吉童傳』에는 傳을 붙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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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고소설 연구』 P144
19)『한국고소설의 재조명』 P305~P306
20)『한국고소설의 재조명』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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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洪吉童傳』의 小說史的 位置와 國文學的 價値
1) 小說史的 位置
『洪吉童傳』은 주인공 洪吉童의 영웅적인 삶을 통쾌하게 서술하여 본격화시 킨 최초의 國文小說이다. 소설사적 위치를 살펴보면 다음의 네 가지로 구분지어 질 수 있다.
첫째, 『洪吉童傳』의 창작을 분기점으로 하여 시가 중심의 한문문학 체계에
서 산문중심의 국문문학 체계로 옮겨가게 되었다.
다. 이전의 한문소설은 양반층의 취향에 맞게 창작되었지만 국문소설은 하층
민까지 두루 접할 수 있는 쉬운 문제와 흥미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둘째, 이행기 이후에는 독자층이 중인과 여성에게까지 확대되었고 작자 미상의 많은 작품들이 방각본으로 출판되어 국문소설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셋째, 『洪吉童傳』은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주제를 서얼문제나 탐관오리, 의적, 이상향으로 설정하여 소설을 민중과 쉽게 친화시키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작가의 시대에 대한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다.
넷째, 『洪吉童傳』은 당시 신분을 중시하던 조선 사회에서 천대받았던 계층인 주인공 洪吉童의 사회제약에 맞서서 이상을 실현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2) 國文學的 價置
사람의 일생을 있었던 사실에 따라 서술하는 傳은 한문학이 밀려나자 國文傳記로 이어졌다. 조선후기에서는 『洪吉童傳』의 창작을 계기로 傳記와 小說이 공존하면서 傳記는 문학으로서 위치가 격하되는 대신 小說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洪吉童傳』은 傳이면서도 小說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洪吉童傳』은 도적을 중심으로 한 영웅소설이며 양반가정의 모순과 서얼차별의 불합리성에 대항하여 지은 社會小說이다. 또한 국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神聖小說의 범주에서 벗어나 세속 소설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웅소설의 전형을 확립하고 있다.
『洪吉童傳』은 당시 중국의 演義小說의 영향으로 <서유기>에서는 도술에 관한 것이, <수호전>에서는 도적의 의적행위가, <삼국지연의>에서는 분신법이 서로 상통하고 있다.
Ⅴ. 結 論
이상으로 許筠을 중심으로 한 作家論과 『洪吉童傳』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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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筠은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과거에 급제하여 수많은 관직을 거치면서 우
참찬에 이르렀고, 중국에서도 뛰어난 문필가로 알려졌지만 경박한 성격과 무절제하고 과격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고, 불교나 서학 등 이단에 심취하고, 서얼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는 달리 그는 자기나름의 일관성 있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으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은 『洪吉童傳』을 비롯한 다섯 편의 傳과 『惺所瓿覆藁』에 論의 형식으로 豪民論과 遺才論을 남기고 있다.
許筠은 특히 그가 평소에 어울려 지냈던 서얼들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여 능력이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쓰이지 못하고 불우하게 일생을 보낸 인물들의 傳記를 쓰기도 하고 시선집 『국조시산』에 그들(서얼)의 시를 싣기도 했다.
『洪吉童傳』은 許筠이 서민을 의식하여 지은 소설로 탐관오리의 부패상을 고발하고 양반들의 축첩에 대한 공격과 서출이기에 벼슬길에 나갈 수 없는 적서차별의 모순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吉童을 통하여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대목에서는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洪吉童傳』은 초반에서의 吉童의 적극적인 저항의지가 후반에 가서는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이상국을 건설하려는 소극적 태도로 끝나게 되어 있는 것이 이 작품의 限界라 하겠다.
『洪吉童傳』의 작가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는 여러 학설이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 『洪吉童傳』은 許筠이 지었고 ‘국문원전설’이 定說로 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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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고전소설 연구의 방향』, 한국고전문학 연구회, 서울, 새문사, 1985
2) 박태상, 최철, 『국문학개론』, 방송대학교 출판부, 1985
3) 이능우,『고소설 연구』, 서울, 二友出版社, 1980
4) 이능우,『홍길동전과 허균의 관계』, 『국어국문학회』, 1969
5) 이이화,『허균의 생각』, 뿌리깊은나무, 1980
6) 이상택, 윤용식, 『고전소설론』, 방송대학교 출판부, 1986
7) 오영석,『한국고전소설 연구』, 서울, 文潮社, 1986
8) 정연희,『홍길동전 연구』,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1996. 8
9)『한국고소설의 재조명』,『고소설 연구총서 제4집』
한국고소설 연구회 편, 서울, 아세아문화사, 1996
10)『한국고전문학대계』 소설집Ⅲ, 서울 명문당,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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