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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고 다이어리

2011년 영화여상동문회

 

 

                                                   ♣ 永化女商 同門會 ♣ 




 1966년 영화여자실업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관광과공예과가 생겨났다.

나는 1970관광과에 입학했는데 제4회 졸업생이다.

 모교는 1970년대 당시 정부시책의 일환으로 70년대 밀려드는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여행사 가이드와 호텔리어를 양성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관광과가 신설된 특성화 학교이다.

 당시 다른 일반 고등학교에서 영어 외에 제2외국어로 독일어와 불어를 배울 때 <영화여상>은 반대로 제1외국어로 일본어 문법 및 회화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영어회화를 제2외국어로 배웠다. 요즘 후배들은 영어, 일어, 중국어까지 배우고 있다.


 2011년까지 총 42회에 걸쳐서 1371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교실과 학생 수가 증가하였다. 동창생 O의 말에 의하면 예전과 달리 갈수록 모교 학생들이 전문대학이나 4년제 대학교로의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1967<인천여자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 가을에 12살 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백일이 지나자 소아마비로 판명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어려운 가정형편에다 동생한테 계속해서 병원비가 들어가니까 가정형편이 더욱 기울어져서 인문계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실업계고등학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천여상>에 진학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당시 <영화여상> 1회 졸업생 중에서 2명이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EXPO 박람회에 안내원으로 선발되었다는 홍보문구를 보고 나도 관광계통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관광과를 선택했다.


 나는 여고 3학년 여름방학기간에는 유신고속관광(코오롱고속관광) 버스에서 안내원 실습을 하면서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할 기회가 있었다.

함께 동승한 가이드가 유창한 일어를 하는 것을 보고 통역안내원이 되고 싶었지만 졸업 후 이모부님이 소개한 운수회사 경리로 근무하면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일본어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내 월급을 모두 어머니께 갖다드려야만 했기에 끝내 꿈을 접었다.

 인천지역 중학교에서 실업계 여고를 지원할 때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인천여상>을 선호했지만 <영화여상>은 관광계통 과목뿐 아니라 타자와 주산과 공업부기를 함께 배워서 은행 및 사무직뿐 아니라 관광계통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많았다.


 학교 건물이 오래 되어 20112월에 교사를 증. 개축하여 학교 모습이 새로워졌다.

나는 지난 115일 모교인 <영화여상> 1~5회까지의 동문회에 다녀왔다.

 나는 모교 1973년 제4회 졸업생으로 1994년 방송대 국문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성적증명서를 떼려고 잠시 들렀고 그 후 18년 동안 학교에 가 본적이 없다.

 동창카페에 모교에서 동문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학교와 친구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를 준비해 가지고 갔다.

  학교 가까이에 도착하면서 정문이 보이자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40여 년 전에 내가 다니던 학교가 틀림없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리운 학창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학교 정문 앞에서 현직 K교감선생님을 만났는데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주시고 직접 학교안내도 하셨다.

 K선생님 덕분에 학교를 배경으로 먼저 도착한 동창 S와 교사로 재직 중인 O와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은사님이 도착하셔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동창 O의 안내로 학교 도서관과 체력 단련실 등을 구경하고 대강당에 들어갔다.

 동문회피로연은 대강당에서 마련한 출장카페로 준비되었다.

대강당에서 학창시절 은사님과 4회동창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회포를 푸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3때 담임이셨던 S선생님을 뵙고 다가가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입니다.하니까 웃으시며 그럼 알지.하셨다.

 당시 S선생님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서 ㅆ발음을 ㅅ으로 하는 바램에 수업시간만 되면 웃느라 정신없었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전보다 경상도 악센트가 약해진 것 같다.


 사실 여고시절 내내 실업계여고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빠졌고, 행여 길에서 대부분 <인일여고>로 진학한 <인천여자중학교> 동창생을 만나게 될까봐 한 동안 동인천역 방향으로는 다니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형편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인 나는 학교에서는 말이 없었고 용돈이 전혀 없어서 친구들이 빵집에 갈 때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집안일을 거들었다.

하지만 영화여고친구들이 나한테 따뜻하게 대해줘서 점점 학교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


 당시 관광과는 한 학년에 1개 반밖에 안 되어 학생 수가 적어서 동문회라기보다 동창회 성격이 짙다.

올해는 1회 선배님부터 5회 후배까지 합동으로 동문회를 하니까 내용이 알차고 풍성해졌다.

 1973년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고 소모임으로 정기적인 만남을 가져온 친구도 있다.

 S친구는 4회 졸업생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카페지기로 활약하고 있는데 늘 친구들의 동정을 사진과 글로 카페에 올려주어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았다.

 O친구는 모교에서 일어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데 동문회에 4회 졸업생이 가장 많이 참석하자 누구보다도 가장 기뻐했다.


 앞으로 4회 동창생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이기로 했다.

 1955년생 양띠와 1954년생 말띠가 모여서 이루어진 여고동창회가 앞으로도 우애를 돈독하게 하고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모교에서 3년 동안 일본어를 열심히 배운 덕분에 아직도 일본어 기초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서 요즘은 혼자서도 일본어 기초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다가오는 2012년에는 <방송대학교> 일본학과에 편입하여 일본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관광통역사 자격증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학창시절 관광과에서 배운 내용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友瑛. 2011.  November.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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